남북간의 경제 협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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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정희 대통령은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 제5주년을 맞아 남북한 관계에 관해 또 하나의 획기적 「이니셔티브」를 취했다.
남북한간에 교역·기술 협력·자본 협력의 길을 트고 이의 추진을 위해 쌍방 민간 경제계 대표로 「남북간 경제 협력 촉진을 위한 협의 기구」의 구성을 제의한 것이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관계 각료 회의를 가질 용의까지 표명했다.
이번의 「6·23 담화」는 지난 70년의 8·15 선언과 7·4 공동 성명, 6·23 선언, 평화 통일 3대 원칙 표명 등을 통해 천명된 평화 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본 입장을 발전적으로 구체화한 조치다.
통일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일관된 접근 방식은 우선 손쉬운 문제부터 해결함으로써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축적하여 그를 바탕으로 정치·군사적인 근본 문제의 해결에 나서자는 것이다.

<점진적 통일에의 접근>
바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 방식이다. 이산가족의 재결합이란 인도 문제가 남북 대화의 발단으로 제기되었던 것도 이런 점진적 해결이란 기본 방식의 일환으로 서였다.
이산가족 문제와 이번 경제 협력 촉진 제의는 모두 우선 인간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족의 이산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통과 5천만 동포의 생활 수준이란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의 협력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생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되면 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제의의 내용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상호간의 불신 해소→민족의 동질성 회복→평화 통일의 성취란 긴 여정의 단서가 제공된다는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
경제 협력이란 차원에서 볼 때 남북한간에는 서로 보완될만한 여지가 상당히 있다.
원래 남북한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상호 의존적인 체제였었다. 지하자원과 전력자원이 풍부한 북한 지역은 공업지대로 개발되었고, 경지가 많은 남한 지역은 농업 및 경공업 지역이었다.
따라서 국토의 분단은 남북에 파행적 경제권을 형성시켰으나, 지난 30여년간 각각 자립적인 경제 단위를 지향함에 따라 의존 여지가 대폭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폭넓은 교역 대상 품목>
그러나 지금도 비교 우위에 입각한 보완적 관계의 형성을 통해 상호 이익을 꾀할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
우선 남북간의 교역은 수송비가 적게 들어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 비해 조건이 좋다.
교역품으로는 우리의 직물류·신발류·전기 기기·의약품·석유제품·종이 등의 공산품과 북한의 무연탄·철광석·아연 등의 광산물이 당장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이다.
또 기술·자본의 협력에 있어서도 금강산·백두산 등의 관광지 개발이라든가 민생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 생산 부문이라든가, 그 대상을 찾으려고 들면 개발 여지는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경제 협력이 민생 부문에 국한될 수밖에 없겠지만, 서로 불신만 해소되면 대상을 여타 부문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6·23 담화」가 경제 협력의 추진을 위해 민간 기구의 구성 제의와 함께 각료 회의를 열 용의까지 밝힌 점에서 남북 경제 협력에 대한 우리측의 성의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경제 협력의 실만 거둘 수 있다면 협의 창구에 구애되지 않겠다는 적극적이고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 사회는 정치 이념이나 사회 체제를 초월하여 경제 발전을 위한 교류와 협력을 넓혀 가는 추세에 있다. 하물며 같은 민족끼리 서로간의 일상 생활 수준의 향상을 위한 기초적인 협력마저 마다할 이유는 결코 없는 것이다.

<대화 재개의 계기로>
더구나 이를 위한 남북한 대표의 대좌가 중단되었던 남북 대화의 재개를 위한 자연스러운 계기로 됨에 있어서랴.
만일 이번 제의마저 북한측이 외면한다면 이는 5천만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제의는 설혹 일방에 의해 단기적으로 외면된다해서 끝까지 외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측의 단기적인 반응이 어떻든 우리로서는 이러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니셔티브」를 계속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경제 협력 제의에 대한 북한측의 현실 감각 회복과 긍정적인 반응을 기다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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