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전 시대」기약 해준 푸짐한 의욕|「중앙 미전」의 공모 작품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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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처음 여는 「중앙 미술 대전」이 이렇게 성황인 것은 일단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응모 점수의 양면에서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서양화는 6백46점에서 14%가 입선되고 동양화는 2백13점 중에서 19%이고, 조각은 65점 가운데 67%가 선에 들었더군요. 이런 사실은 우리 나라의 미술 인구가 꽤 많아져 당락의 관문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성=미술계로선 이런 민전이 생긴다는게 경사스럽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과거 관전 하나만일 때와는 달라 이젠 그야말로 민전 시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박=우리가 「신인」이라면 종래의 권위 의식 때문에 낮춰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신인의 입장이 얼마나 좋은 위치인지 모릅니다.
아직 책임 지지 않는다고 할까 이것저것 실험 작업도 해보고 남의 것을 본 받으면서 자기 것도 시도해 보자. 그래서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성=그러나 어느 공모전을 보든 생각나는 것은 신인이 상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눈치를 보지 말고 서툴면 서툰대로 자기 나름의 밀고 나가는 배짱이 필요하지요. 상은 타도 좋고 낙선돼도 좋다는 자기 주장이 없고서는 평생 동안 작업할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자꾸 해보는 자신감이 필요한데 「소 뒷걸음치기」로 응모해선 곤란합니다.
박=그렇죠. 우리 나라 사람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편이니까 철저하게 추구해서 밑바탕을 삼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추구해서 결판낼 자신감이 부족하고 특히 서양화 부문을 보면 기존 「패턴」의 발상법부터 배우려는 경향이 압도적이지요.
물론 우왕좌왕하는 미술 교육에도 문제는 있겠죠. 하지만 교육이란 마차를 태워주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고적인 것만 제시받은 뒤 나머지는 자기가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선 지석철의 『반작용』이나 우제길의 『리듬 78-5G, 차일두의 『휴일』 등은 자기 생각이 분명해 보이고 또 자기에게 맞는 표현 방법을 택했다 싶군요.
요는 사물을 자기 눈으로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보는 내 자연, 내 인물일 때 그 작품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성=억지로 꾸미려해도 꾸며지지 않는게 작품인데 자기 생각대로 꾸몄다면 좋은 것입니다. 가령 오병인의 『겁』은 사찰의 판벽에 그려 있는 신장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데 그저 묘사한게 아니고 자기 주장을 살려 변화시킨 작품입니다.
그건 실력 없으면 안됩니다. 이숙자의 『맥파』도 색조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지만 실수한 구석이 없이 다듬어진 작품입니다. 바둑이 한 수의 실수로 승부가 가려지듯 점하나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급수가 높든 낮든 자기 나름대로 통일된 분위기를 갖는다는게 소중합니다. 연조가 짧아서 완성작은 못되나 홍순주의『염원』은 그 점 호감이 갑니다.
박=동양화 부문에서 유독 현저한 점은 산수화가 적다는 사실인데…
성=인물화만 돼도 또 좀 다릅니다. 학교에서 배운 바에 따라 비슷하게까지는 갈 수 있는데 산수화는 어느 만큼 연조가 쌓여야 나옵니다. 학생 전에 산수가 거의 없다는 것은 곧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천재적 소질이 있다해도 칠만 한다고 산수 맛이 나오진 않습니다. 양심적으로 한 20년은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공모전에도 몇점 산수가 보이는데, 그 중 박대성의 『추학』은 소나무 처리가 좋은데 반해 가을빛이 다소 어설프고 이원좌의 『화암 소금강』도 갈대밭을 잘 소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박=동양 화단엔 원로와 지금 신인과의 사이에 단절된 감이 없지 않지요?
성=큰「빌딩」을 세우려면 기초를 튼튼히 닦아야 하지요. 무릎이 썩도록 수련하지 않고는무르 녹는 선이 나올 수 없어요.
박=작품은 현대 의식이 투철하다든가, 표현 방법이 철저하다든가. 그런 연후에 제작되어야 건전한 것이 나오는데 신인들 사이에도 성급하게 대드는 경향이 없지 않아요. 철저하지 못한 사이비 역사 의식이나 현대 의식은 더욱 경계 해야합니다.
또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이 요즘 유행하는데 그 결과가 어떠하든 그렇게 나타나야할 필연성이 없이 나타나는 것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성=나와 같은 연대는 어떤 타성에 굳어 있습니다만, 한창 뻗어나는 신인들이야말로 그 왕성한 의욕을 기초를 닦는데 쏟아서 우리 풍토에서 우러난 필연적인 작품과 철저한 추구를통해 이제 한국 미술의 빛나는 전기를 이룩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성재휴 (동양화가)
박내경 (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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