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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와 고소…출판계에 잇단 시비『제목저작권』"있다"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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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출판계에 제목저작권시비가 부쩍 늘고 있다. 아동문학가 이영희씨가 그의 수필집 제목 『살며 사랑하며』를 동명수필집으로 출판하고 월간지 부록으로 내는 데 대해 저작권 침해로 2일 검찰에 고소장을 냈고, 작가 강준희씨는 창작집 제목인『하느님전상서』와 같은 제목의 장편소설이 나오자 출판사측에 항의하고 나섰다.
이씨의 수필집 『살며 사랑하며』는 73년6월 서문당에서 출판한 사랑을 주제로 한 수필집. 이씨가 제소한 같은 이름의 수필집은 주부 생활사계열 출판사인 현대인사가 문필가 10인의 주제별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으로 동사의 월간지『나나』7월호 부록으로도 내고있다.
강씨의 『하느님전상서』는 76년11윌 현대문학사에서 출판한 그의 첫 단편집인데 이 제목은 이미 75년 강씨가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단편에서 썼던 것이다. 그런데 77년10월 문리사에서 출판한 이문희씨 장편소설 제목이『하느님전상서』로 나온 것을 뒤늦게 안 강씨가 출판사측에 저작권 침해라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제목이 같기 때문에 저작권시비가 붙어 법정으로까지 간 것은 이씨의 경우가 처음.
이씨는『제목이란 작자가 심혈을 기울이고 명예를 걸어 지어내는「창작이상의 응결된 창작」으로, 이 제목만 하더라도 1개월 이상 고심한 끝에 1백여개의 이름을 창출한 가운데서 스스로 골라낸 것이다』라면서 주부생활사의 동명수필집을 압수하고『나나』7월호와 그 별책부록 배포중지를 요구했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나나』지의 김재홍 편집장은『당초「에세이」집 명칭은 77년 4월호 「엘레강스」지에서부터 사용, 고정「칼럼」이 되어 기왕 연재하던 것이고 해서 그대로 썼을 뿐 같은 제목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최근에는 작가 홍성원씨의 장편소설 『남과 북』이 KBS-TV에 방영되리란 소식을 들은 한운사씨가 자신의「드라마」제목『남과 북』의 저작권보호를 들고 나온 일이 있었다. 결국 홍씨의 작품이 TV에 방영될 때는 제목을 바꾸기로 타협하고 끝났다.
출판물의 수량과 종목이 늘어나면서 내용 뿐 아니라 제목이 서로 충돌하는 사건은 그 동안 심심찮게 있어왔고 근래 부쩍 늘어가는 추세다. 75년에 벌어졌던 작가 김승옥씨와 김수지씨간의 『보포녀자』제목 시비는 출판가에선 꽤 유명한 사건.
김승옥씨가 69년 주간지를 통해 발표했던 소설의 제목을 김수지씨가 동명제목으로 TV 「드라머」와 영화「시나리오」를 써 낸데 대해 저작권침해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여론심의에서는 김수찬씨의「시나리오」제목이 그대로 통과되었다.
지난해에는 또 작가 최인호씨가 한수산씨의 단편소설『어제 내린 비』와 같은 제목의「오리지널·시나리오」를 썼다가 시비가 일었다. 최씨는 또『거꾸리군 장다리군』이란 소설로 화가 김성환씨와도 시비가 불은 일이 있다. 「사과」와 「약간의 보상금」으로 모두 결말이 났다.
성질이 좀 다르긴 하지만 지난 4월 서울고법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작가 조선작씨의 경우는 제목저작권 보호에 하나의 고무적 사실이었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작가 조씨는 태창영화사가『창수의 전성시대』라는 영화를 만든데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제소했던 것. 그런데 소장에서 조씨는 제목만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내용 전개가 같다는 점을 들었고 재판부에서도 이점이 더 많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만화가 정운경씨가『또북이』의 이름을 따서 만든 빵 회사를 제소했는데 서울고법은 정씨 사건을『작가나 만화가가 고안한 작품의 제호자체는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냈다. 만화가 안의섭씨와 소주회사간의『두꺼비』논쟁. 작가 조흔파씨와 제과회사간의 『얄개』논쟁도 유야무야로 끝나 명백한 제목저작권 침해를 규정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작권법자체가 허술한데다 제목에 대한 것은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제목에 더 많은 정력을 쏟는다는 작가나 만화가들은 아예 상표 등록법에 따라 등록을 하기도 한다. 김승옥씨가『보통여자』를, 그리고 김성환씨가 『고바우』를 상표로 등록했다. 만화가 정운경씨도『또복이』와『왈순아지매」를 등록하겠다 고 한다.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출협 민영빈 부회장은「출판계에서 같은 이름의 제목을 허용한다면 먼저 책을 내고 광고한 창의적 출판사가 후발 출판사에 의해 항상 손해를 보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사 황인철씨는 제목이 저작권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에 회의를 나타낸다. 일본·미국의 경우 상표 등록법이나 기타 절차에 따라 등록되지 않으면 보호가 되지 않는 것이 통례로 되고 있다. 다만「독창적」인 것과「일반적」인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관념적 기준 제시될 수 있을 뿐이다.
어떻든 이 문제는 앞으로 출판물량이 늘고 경제·사회활동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말썽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는「연구과제」의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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