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한가족<10>|바레인【글·사진「매내마」=조동국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하늘에서 보는「바레인」은 얼핏「싱가포르」나「방콕」같은 착각을 준다.
모래와 가토에만 눈익어온 중동여행자에겐 7, 8m나 높고 곧게 촘촘 뻗어있는 대추 야자나무가 한결 기름지고 싱그럽다.
그러나 모래먼지와 휴지,「비닐」봉지 등이 무질서하게 흩날리는 꾸불꾸불한 거리에 들어서면 자칫「로맨틱」할 뻔한 첫 인상이 어느새 지워진다.
수도「매내마」시의「명동」으로 손꼽히는「매내마」가는 서울의 명동처럼 현대식 건물로 단장됐지만 양복과 양장의 신사·숙녀만이 이 거리와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고정관념.

<보수와 진보가 공존>
「아랍」의 전통복강으로「야시마하」를 쓰고「디시다샤」로 불리는 일종의「원피스」를 입은 원주민들, 그리고 검은 천과 망사(얼굴)로 온몸을 감싼「아바」차림의 원주민 여성들이 많은 외국인들에 섞여 양장점 진열장에 광고용으로 내건「비키티」차림의 대담한「노출」 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활보한다.
「보수」와「진보」가 아무런 마찰 없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길가에 면한 앞 건물로만 보면 이곳「매내마」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별차가 없다.
그러나 뒷골목에 한 발짝만 들어서면 시대는 당장 수십년전으로 바뀐다.
포탄에 맞은 듯 허물어진 낡은 구옥들이 수년동안 비질한번 안 했을 거리에서 수일동안 누워 있었을 들고양이 시체를 내려다보며 줄줄이 서있다.
「바레인」의 미를 눈으로 보면 이처럼 탁하지만 마음으로 본「바레인」은 중동의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밝고 따뜻하며 개방적이다.
「아랍」국가들에게서 삭막한 선입관만 가진 여행가는 새벽3시까지 흥청대는「나이트·클럽」에서 양주를 마시며「플로·댄스」를 추는「유럽」무희들의 퇴폐적인 미에 잠시나마 귀향의 안식과 여유를 느낀다.
1861년부터 1백여 년이나 영국의 통치를 받은 이곳 주민들은「걸프」지역의 중심지라는 지형적 특수성 등으로 주변의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일찍부터 머리가 깼다는 것이다.
기원전부터 인도양과「아라비아」만 및 홍해를 잇는 전략적 위치 때문에 항상 인접강대국의 침략을 받아온 이 나라는 아직까지 중계무역지로서의 기능을 유지, 중동의「싱가포르」로 자처한다.
71년에야 독립,「유엔」에도 가입한「바레인」은 서울보다 약간 큰 섬나라로 인구로 보면 우리나라 성남시 정도.
독립이듬해에 제헌국회를 구성한 이 나라는 73년6월 새 헌법을 제정, 12월에 국회도 열었으나 급진세력이 등장, 혼탁한 경치분위기가 조성되자「할리파」왕은 75년8월 국회를 해산하여 토후중심의 집권체제를 강화, 현재와 같은 안정을 구축했다.

<토후중심의 반공국>
철저한 반공국인 이 나라는 3년전 우리나라와 정식외교관계를 수립, 76년5월 중동으로는 처음으로 대한항공이 이 지역에 취항하면서 양국의 실질적인 유대가 급격히 굳어졌다. 최근 2년 동안 양국을 방문한 경제관계장관은 모두 4명. 북괴는 전혀 발붙이지 못하고 있다.
32년 중동에서 제일먼저 석유를 발견한 이 나라는 현재 세입의 80%이상을 석유수출에 의존하고 있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금세기 안에 바닥이 드러날 것에 초조해 하고있다.
석유에의 의존도를 탈피할 것에 역점을 둔「바레인」은 세계수준의「알루미늄·바레인」 (알바) 회사와「오펙」공동투자의「아랍」조선소(아스리),「바레인」석유회사(발코등 3개 기간산업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인구 20%가 외국인>
한국인들이 이곳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75년 현대「그룹」이「아스리」건설공사를 맡은 때부터. 그 후 영진공사등 건설회사와 근로자들이 점차 늘어 지금은 미국의「로스앤젤레스」시의 인구비례처럼 전 인구의 1%인 3천명을 기록하고있다.
일본인들이 별로 없어 거리에 나가면 동양인이면 누구나 한국인 인줄로 안다.
상점에 들어가면「어서. 오십시오』『이게 좋습니다』며 척척 한국어를 요사하는 상술을 과시한다.
한국건설회사들은 정부청사·「호텔」건설 또는 부두 및 공항하역 업무에 중사하고 있고 최근엔 간호원 30여명도 진출했다.
75년이래 77년 말까지의 총 건설수주는18건에 2억1천만「달러」의 규모다.
한국의 대「바레인」수출은 77년말 현재 건설자재 44%를 비롯, 8개 품목에서 2천7백만 「달러」를 기록, 올해는 3천만「달러」의 수출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중공 및「싱가포르」등 동남아국가의 도전이 심해진데다 한국업자들이 소량주문을 기피하고 적기선정을 이행하지 않는 등 이유로 한국상품의 진출은 앞으로 큰 시련을 받을 것 같다는 것.
외국인으로는 한국인 외에 영국인 5천명, 미국인 3천명이 건설 및 고급기술인력으로 진출해 있고 인도인「파키스탄」인,「오만」인,「이란」인 등이 노동자들로 대거진출, 모두 20%정도가 외국인들로 돼있다.
인구6·87명에 차량이 1대 꼴인 4만대를 보유,「마이카」시대를 누리고 있지만 날로 늘어가는 외국인들 때문에 주택난이 큰 골칫거리다.
이 때문에 물가고에 겹쳐 침실3개인 집의 한달 삭월세는 우리 돈으로 1백만 원이고, 중급의「호텔」값은 하루 5만원 꼴로 세계 최고수준.
문맹율은 60%로「걸프」지역에선 낮은 편인데 여자 및 노년층에 편재해 있다.
그러나 50년대부터 현대교육을 실시해 고교까지는 무료교육이며 2개 대학교에 6만명의 대학생이 있다.
10년이나 이곳에서 강사 한다는 한「레바논」인은「세금이 없어 돈벌기는 이곳처럼 좋은 곳이 없다』며 인심도 야박하지 않아 경이 붙어 좋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