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조사, 역사에 보고한다는 자세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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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가 90일간의 세월호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여야를 압박하기 위해 사흘을 농성한 유가족들이 본회의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국정조사계획서가 그제 밤 통과된 것이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출석 문제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증인으로서 실명을 박는 형식을 취하진 않았지만 김 실장은 국정조사 특위가 보고받을 기관의 장(長) 자격으로 출석하게 됐다.

국조특위의 조사 대상 기관은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비롯해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안전행정부, 해양경찰청, 국방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18개 정부기관과 KBS와 MBC,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 4개 다른 기관이 포함돼 있다. 조사기관의 방대한 규모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건사고가 아니라 한국 정치·사회·문화의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6월 2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될 국정조사는 세월호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안전문제를 해부하고 안전불감증을 도려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정조사는 여야가 정치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2014년 대한민국 안전 보고서’를 만드는 세미나가 돼야 한다. 세월호 사건의 시작부터 단계단계마다 발생한 문제점을 치밀하고 상세하게 조사·분석하면서 점점 커다란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심재철 위원장을 비롯한 국조특위 18명의 의원은 국정조사 보고서를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국민안전 매뉴얼로 만들겠다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을 다룬 과거의 국정조사처럼 여야가 서로 정치적 주장만 반복하다 새로운 발견이나 교훈 없이 끝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조 기간 중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끼여 정치 쟁점을 일부러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권력 실세나 특정 사안만 공격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게 국조에 임하는 의원들의 해묵은 폐해 아니었나. 세월호 참사 이전의 한국과 이후의 한국이 달라져야 하듯 세월호 국조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