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 있고 사랑은 메말라…"불안한 가정"이 늘고 있다|이효재 교수, 가족학회 발표회서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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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출 1백억「달러」·산업화』사의의 한국가족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 전통적 봉건사회에서 근대화 민주가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라고 흔히 지적돼 왔는데 과연 오늘 한국 가정의 문제는 어떤 것일까.
작년 11월 한국에선 처음으로 가족관계 법학자·사회학자·인류학자·아동심리학자·사회사업가·가정법률실무자 등 70여명이 모여 창설한 한국가족학회(회장 이효재)는 그 첫 학술발표회를 갖고『한국가족의 종합적 진단』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가족문제를 파헤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20일·이대 선관 교수휴게실·l백명 참가).
이날 학술발표회는 현재 한국가정의 결혼·자며·노인 등 구체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특히 산업화 속에서 제기되는 가족문제가 전체적인 측면에서 미루어 주목을 끌었다.
『산업화와 가족문제』라는 제목으로 이날 이효재 교수(이대·사회학)가 발표한 내용을 간추려본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문제는 우선 산업화로 인한 가족의 사회이동과 소비생활에서 빚어지는 물질주의 가치관의 여러 가지 부작용이 종래의 우리가정을 파괴하는 현상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에 있어서의 산업화는 결국 농촌의 인구를 도시로 싼 임금에 옮겨놓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이 한 가정이 이사를 다니고 가족개개인이 직장을 이동하는 등의 불안정한 요소를 만들어 놓았다.
즉 지금까지 모든 생활을 자연의「리듬」에 맞추어 가족단위로 함께 해왔던 농촌가정이 도시로 옮겨짐으로써 낯선 환경 속에서 주택난과 도시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됐고, 또 한 가장이 도시근로자의 직장인이 되면서 불안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돼 버렸다. 이 직장 저 직장 옮겨가며 언제 직장을 잃을지 불안해하는 가장은 곧 한 가정전체를 불안정속에 몰아넣는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직장을 옮겨다니는 가정이 많아진 것은 곧 불안정한 가정이 늘어난다는 뜻이며 여기에 이들 자녀들의 인격형성 등 장래의 불안까지도 증가시키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에서 한 가정이 지역공동체로서의 소속감마저 가질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오늘의 도시생활이 단지 권력구조에 기반 한 행정구조와의 공적관계만을 경험할 뿐 이웃과 지역사회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생활은 요즘「아파트」촌에서 볼 수 있는 이기주의와 무관심의 경향만을 띠어 실제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공동사회로서의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변의 이러한 도시적인 이기주의와 무관심의 한편에선 또 핵가족으로만 매달리는 현상을 빚고 이것이 가족의 정신적 부담과 정서적 갈등을 부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의 생산활동과 소비자 활동이 철저히 분담되어 남편은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소비를 맡는다는 역할로 인하여 가족의 소외를 부른다. 즉 남편이 돈을 얼마나 벌어오는가가 그 가장의 지위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이것이 부부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나 물질주의 가치관이 가정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물질주의는 결국 한 가족에서의 진정한 사랑의 경험을 박탈하여 모든 것이 돈으로만 해결한다는 식으로 메말라가 그 가족공동체는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산업화사화의 가족문제는 정책적으로 인간화의 환경조성, 남녀노소를 인간적 사랑으로 묶을 수 있는 가치관의 실천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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