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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울에서 온 유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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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지방대 학생은 자부심 또한 커졌다. 이제는 뭔가 해볼 수 있다는 기대와 의욕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다. 서울로 구태여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또 취직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캠퍼스」에 가득하다.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해요. 강의실을 메운 학생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반짝입니다. 5, 6년전에 엿볼 수 있었던 패배의식이나 열등감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요.』 1년에 한두 차례 특강을 맡아 부산지역의 부산대·동아대와 마산의 경남대에 원정출장을 나가는 연세대 유종해 교수(행정학)의 느낌이다.
이러한 「프라이드」는 문교 당국의 갖가지 「특혜」가 이제 어느 정도 피부로 느껴지게끔 된 때문일까. 「오막살이」학생식당이 어느새 1억5천만원짜리 학생회관으로 탈바꿈하였고, 새로 지어진 도서관의 위용 또한 남부럽지 않다. 약진하는 지방대학을 위해 문교부는 막대한 예산을 따로 배정해 놓고 있다는 소문이고 보면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들어가 놓고 보자"는 식>
또 취직은 어떤가. 지방의 몇몇 대학은 취업률이 95%를 웃돌고 있다. 인재 「스카우트」의 바람은 지방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체의 추천 의뢰서가 쏟아져 들어오지만 보내줄 학생이 없다.
그래서인지 「천하의 영재」가 서울로만 몰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맞는 곳, 편리한 지역이면 어느 대학에나 둥지들 튼다. 매년 적지 않은 타도 출신이 지방대학에 몰리고 또 그 추세는 증가일로에 있다.
전남대의 경우 금년 입학생 2천2백40명중 1백58명이 타도 출신이고 그 지역도 고루 분포돼 있다. 서울이 64명, 경기가 12명, 경북 7명, 경남 19명에 전북이 34명이고 멀리 제주에서도 6명이 왔다. 충남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충남지역 출신이 2백94명인데 비해 타도 출신은 1백81명으로 거의 맞먹는 숫자로 육박하고 있다. 물 건너 제주대 금년 입학생 6백61명중 1백50명이 「육지」에서 왔다는 얘기고 보면 국내 유학의 열도를 짐작할 만하다.
지방대학의 이같은 「성황」의 들뜬 분위기 속에 몰려드는 유학생은 대충 두 부류로 나뉜다. 지방대 육성의 혜택을 톡톡히 보려는 정착파와 타지방대학이라도 우선 붙고 보자 식의 눈치파. 후자의 경우는 등록금이 사립대보다 훨씬 싸고 상대적으로 전망이 좋은 국립대를 찾아다니는 실리가 있는가 하면 사립대라도 우선 들어가 놓고 보자는 허세가 있다.
타도 출신 가운데서도 서울 유학생은 지방대로서는 특히 골칫거리에 속한다. 학생들 속에서 이들은 경원되는 「미운 오리새끼」가 되기 일쑤다.
지방대생들이 이들을 경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 없는 철새들이 대부분인 탓이란다. 면학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치열한 입시전쟁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 간판을 따겠다는 얄궂은 친구들이 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엿하지 못한 명분을 갖고 찾아드는 학생들을 보면 가뜩이나 자신감에 부풀고 있는 지방대 학생들은 그렇게 탐탁하지 못하다. 또 이질문화의 충격도 문제.
이들은 2학년만 되면 서울로 편입해 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립대의 경우 재정 문제까지 일으킨다. 서울에서 가까운 충청도 지방의 대학은 특히 심각하다. 청주대의 한문교육과 같은데는 전체 학생 30명의 절반이 빠져나갈 정도라는 것. 결과적으로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이질문화 충격이 문제>
이같은 사정은 교사 지망생들이 몰리는 공주사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전체 재학생 1천7백30명중 4백명이 서울 출신이다. 이들에게는 중등교사의 지역배정 원칙에 따라 서울에 있는 학교로 배치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이들을 보는 눈이 따갑기만 한 것은 이들 자체의 이질적 행동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여 「보컬·그룹」을 만든다거나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영「미팅」따위의 건전하지 않게 보이는 행동도 이들은 곧잘 한다.

<수영 「미팅」등 만들기도>
계명대 김경희양(가정과 2년)은 오히려 지방문화의 건전함을 깨는 일이 많아 이들 철새 학생이 들어오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 서울 유학생이 「철새」나 「유학생」으로 떨어지는데는 우리의 교육제도가 아직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다. 고교 평준화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학력의 저하도 그렇고 비평준화 지역으로 학생들이 몰려다니는 역류현상도 과도적인 병세의 징후가 뚜렷하다.
지방대학이라고 하여 지방민의 지방문화만 고집할 때는 지났다. 학문의 목적이 보편적 진리를 찾는데 있고, 또 1일 통학권의 조그만 땅덩어리에 인력 하나하나가 모두 아쉽다고 하면 지방대학은 과거의 울타리를 헐어 버려야 한다.
『제주대학이 제주 출신 학생들의 양성기관이라는 말은 이제 옛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지역적 편협성을 벗어나 「하와이」대학처럼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해야지요.』 변시민 제주대학장의 말처럼 지방대학이 취직 예비교 같은 지방 「엘리트」 양성기관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문화를 공유하는 종합대의 성격을 뚜렷이 갖출 때면 철새 학생들도 자신의 둥우리를 찾아 깃을 접을 것이다. 【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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