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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환기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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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왜「지방대학」인가?-선뜻 반감을 표시하기는 비단 지방에 있는 교수나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로써 더욱「차별」을 조장한다는 걱정, 그런가하면『이제는 많이 달라졌다』는 새로운 인식을 펴는 사람도 많다.
흔히「대학의 힘」으로 평가되는 학생 수로 따진다면 서울의 고려대(8천5백20명)나 연세대(8천4백20명)보다 더 큰 대학들이 이제 지방에 여럿 있다.

<왜 "지방대학"이라 하나>
경북의 영남대가 9천2백90명, 부산대가 8천7백70명으로 전국 2, 3위를 기록하면서 오직 성역처럼 돼버린 서울대학교(1만3천6백명)를 바싹 뒤따르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캠퍼스」』라고 자랑할 만큼 1백 만평의 평지 위에 자리잡은 대학이 있는가하면「동양최대」「한국최신」의 부속병원이나 시설을 꿈꾸는「몇 개년 발전계획」도 한창이다.
『지방대학, 지방대학 하는데 모욕감을 느낀다』고 어느 교수는 말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돼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반발도 물론이겠지만, 그러나 지금 지방대학이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달리 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리라.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에게는「지방대학」이라는 말이「모욕」으로 해석될 만큼 묘한 뜻이 됐을까.
선비가 곧 관리가 되던 이조시대에도 퇴계나 길재가, 율곡이, 모두 후진양성은 안동에서, 선산에서, 해주에서 하지 않았던가. 서구 대학의 상징이라는「옥스퍼드」나「케임브리지」도 영국의「지방」에 있고「하버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왜 서울대학뿐인가. 아니 더우기 일본의 경도대처럼 동경대, 소위 관학파에 맞서「상대」를 하는 대학도 없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서울 해바라기」라는 말이 있다. 지방의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스스로 비웃는 표현이다.
『기회만 있으면 모두 서울로 가려고 하지요. 지방대학은 서울로 가기 위한 대합실 같습니다. 』부산대 김천혜 조교수(독문학)의 말이다.
지금은 평준화로 달라진 지방의 명문 경북고교는 작년까지만 해도 졸업생의 절반이 서울의 대학에 응시해 왔다고, 박상희 교장은『우수한 학생은 목표가 서울에 있다』고 말했다.
학생도 교수도, 그리고 학부형은 더더욱「서울」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뻗친다.
『서울공화국의 지방 식민지격』이라고 국문학자 조동일 박사(영남대 부교수)는「지방대학」의 위치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정치·경제·문화·사회…우리의 모든 것이「서울중심」이라는 한국적 상식으로 막연히 넘겨버리기에는 그러나「대학」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그것은 너무나 심각하다.
『하다못해 잡문을 쓰라는 부탁도 없으니 교수가 이렇게 자극 없이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읍니까?』지방대학은「잊혀진 곳」이라고 학생들도 분개한다.
책을 집필해도 서울 가서 출판해야 그것이 인정된다. 모든 학회는 다 서울에 있다. 한때 고둥고시출제위원이 전원 서울의 대학교수라 해서 말썽이 된 적이 있다.

<연구조차 할 수 없어>
『앞으로는 지방대학교수를 넣겠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그러나 78년 평가교수단 구성을 보면 85명중 1명만이 지방대학교수(해양대)일뿐 모두 서울의 대학교수들이다.
대학의 구실 중에서「사회기여·봉사」를 어느 시대·어느 나라보다도 강조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 그러니까 지방대학은 전혀 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많은 교수들이 무엇보다 걱정하고 있는 것은 또 지방대학이 지금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데에 있다. 『생명처럼 귀중한 학술전문지도 서울에 올라가야 빨리 볼 수 있지요.』영남대 전경희 박사(분자생물리화학)는 정보가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학술정보가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험기재가 없어 밤차로 서울에 올라가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저녁 차로 다시 내려오는 것은 이공계교수들에겐 흔한 일.『새로운 것을 가르친다는 말을 되새겨 볼 때가 많습니다. 경북대의대 나우연 박사(부속병원 방사선과장)는 20여년 전 시설로 무엇을 가르치겠느냐고 반문한다. 젖소 한 마리 없는 낙농학과도 있다.
서울과 비교한다는 것은 오히려「난센스」다. 지방국립 5개 대학의 도서관 장서를 통틀어야 서울대학의 3분의 2에 그칠 정도다.
대학으로서의 사회봉사나「상아탑」으로서의 연구나, 그리고 인재양성이라는 교육의 면에서나 하나같이 지방대학이 이토록 열세라는 이유들이 결국은『취직시험을 쳐도 면접에서 지방대학 출신이라고 차별할까 봐 겁난다』는「지방대학」의 서울「콤플렉스」를 낳은 것이다.
「지방대학 육성책」의 소리가 높다. 69년 개헌파동을 겪고 다음해 3월 서울대를 관악「캠퍼스」로 옮긴다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거의 해마다 이 지방대학 육성책이 발표되고 있다. 당장 그것은 서울의 학생수틀 묶어두고 지방대학의 학생 수를 늘려놓는 데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3년 사이 대구의 한국사회사업 대학은 학생수가 무려 2백68%가 늘었고 진주의 경상대(2백30%), 마산의 경남대(2백17%), 이리의 원광대(2백n%), 대구 계명대(2백3%)등은 단지 3년 사이에 학생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인구 분산책도 활력소>
75년만 해도 전국의 대학생비율이 서울 56.6%, 지방 43.4%이던 것이 78년엔 드디어 반반으로 올라서 각각 12만5천여명씩으로 됐다.
「수도권인구 분산책」「기술인력공급」이 두 가지가 문교 당국이 내세우는 지방대학육성의 목표다.
70년대 이후 수출증대나 중화학공업 등 고등인재를 필요로 하는 현실적 요구와 또 그 내면에 깔린 의미야 어떻게 해석되든 서울인구분산이라는 정치적 요구가 그러니까 지난 30년간「잊혀진 곳」에 변화의 바람을 거세게 불어넣고 있음엔 틀림없다. 전가의 뇌도처럼 휘두르던「대학정원」이 지방대학에선 너그럽게 요리되고 있으며 지역특성화 계획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비록 대학이라는 사회 그 자체의 절실한 요구보다는 대학외적인 이런「대책」내지「필요」에 의했다 할지라도 하여튼 지금 지방대학은 대전환기를 맞고있다.
지방의 대학을「지방대학」으로 떨어뜨렸던 문화적인 중앙집권, 사고의 중앙집권 같은「서울중심」의 상황은 여전한데, 그렇다면 과연 그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 줄 것인가?
전환의 길목에서 당연히 따지고 가다듬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백년대계」라는 교육문제이기에 또 시대를 초월해서 먼 눈으로 현재를 보는 학문의 대학이기에 더욱 그렇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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