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화3년…인지의 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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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이공」시가 「호치민」(호지명)시로 바뀐 후 동양의「파리」로 불렸던 과거의 영화는 이제 찾아볼길 없다. 밤의 「네온·사인」도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해까지만해도 번성하던 도시장에도 더 이상 내놓을 물건이 없는것처럼 보였다고 최근「호치민」시를 방문했던 한 방문객은 전했다.
공산정권의 정책에따라 3만개의 사기업이 이미 사라졌다. 그중에는 32개의 대기업과 8백83개의 도매상들과 5천2백43개의 소매상들이 문을 닫은셈이다. 쌀·연료·소금·식용류등이 과거처럼 길거리에서 팔리기는 하나 모두 지정한 관리자들이 운영한다. 이것은 점차 공산화의 과정이스며드는 변화의 한 예에 불과하다.
70만의 「사이공」시민이 농촌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하노이」당국은 그들을 농촌으로 이주시켜 식량증산에 동원하는 한편 자본주의에 물든 그들의 정신을 개조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최근 뇌물과 몸을 바쳐「베트남」을 빠져 나온 2명의 「베트남」여인은 「사이공」을 비롯한 「베트남」전역에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도시인들이 농촌에 이주하자 농촌의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고 따라서 농촌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기때문에 반정부운동에 가담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당국은 사태가 이렇게되자 도시인들의 농촌 강제이주를 중단했다고 「베트남」난민은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식량난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쌀과 고구마를 재배하기 위해 「티우」정권이 사용하던 군묘지를 파헤쳐 농토를 만들고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시민들도 공포를 잊기 위해 마약에 매달리기도 하는데 4「달러」(2천원)짜리 마약을 못사는 사람들은 「사이공」암시장뒤 공원에서 목매 자살하기까지 한다고 또 다른 난민은 전했다.
공산정권은 또 「베트남」의 상권을 좌지우지했던 화교들에게 80∼1백%의 사업 소득세를 부과, 화교들의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있다.
화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베트남」을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지만 공산당국의 감시는 한층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도망나온 난민은 정착할 나라가 없다. 「선상난민」이라는 용어는 앞으로도 계속 「뉴스」의 초점이 될 것이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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