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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기자 종군기] 바그다드 남부 곳곳 전투 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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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장(戰場)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4일 오후(현지시간) 바그다드에서 70km 떨어진 미 5군단 16지원단 선발보급부대 임시캠프에서 최전선으로 유류와 탄약을 수송하는 미군 차량들과 함께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불에 완전히 타버린 이라크군 군용트럭이 나타났다.

가까이 가니 이라크군 병사 한 명은 운전석에, 다른 한 명은 조수석 바깥으로 튀어나온 채 숨져 있었다. 튀어나온 시체는 목과 팔다리가 날아가고 없었고, 다른 한명은 하반신이 사라진 채 머리를 운전대에 박고 죽어 있었다.

시체가 타는 냄새가 아직도 남아 주변을 진동시켰다. 시체를 본 경험은 몇 번 있었지만 이토록 참혹한 모습은 처음이다.

이곳을 지키던 미군병사는 "바그다드 남부의 이라크군 기갑부대에 연료를 보급하러 가다가 정통으로 폭탄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사한 이라크군과 똑같이 최전선에 유류를 운반하러 가던 미군 보급부대 병사들은 이 광경에 입술을 깨물었다.

미군의 바그다드 진격이 계속되면서 카르발라에서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이동로는 밤낮으로 포격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간간이 요란하게 발사되는 다연장로켓(MMRS)도 밤하늘에 번쩍거렸다.

이날 새벽 임시캠프에서 자다 화생방 공격 경고를 받고 잠을 깼다. 화들짝 놀라며 화생방복에 화생방 부츠를 신고 방독면을 뒤집어 쓰니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 앞으로 부연 세상이 다가온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윽고 경보가 해제돼 방독면을 벗었지만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린다. 갑자기 가까이에서 드르륵하고 자동화기 소리가 났다. 조명탄으로 벌판이 훤해졌다. 불안한 보초들이 희멀건한 것만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기는 바람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미군은 대개 밤을 이용해 작전을 벌인다. 지난달 20일의 첫 공격도, 지난 3일의 진격작전도 모두 밤에 이뤄졌다. 그렇게 밤이면 밤마다 서로 피흘리는 싸움을 한 끝에 이라크군과 미군은 이제 바그다드의 턱밑에서 대치하고 있다.

야간공격을 하는 미군이나 야간 매복을 하며 공격자를 기다리는 이라크군이나 모두 밤이 무서울 것이다. 군대에서 야간전투 훈련을 받아본 사람들은 짐작할 것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지뢰나 부비트랩의 인계철선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걸음을 옮기고 차를 몬다고 생각해 보라. 언제 포탄과 기관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여기에선 전투병과.지원병과에 상관없이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실제로 겪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일과다.

전쟁이 한창이지만 캠프 외곽에서 본 이라크인들은 무표정하다. 이날 내가 지나가던 길 옆의 밭에서 중년의 이라크 남녀가 분주하게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굉음을 울리는 탱크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손을 흔들기도 한다.바스라에서 사마와.나자프.카르발라로 이어지는 길을 오가며 숱하게 들어온 이라크 민병대의 완강한 저항 소식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무관심한 걸까. 이라크인들의 속내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이라크 카르발라 인근 임시캠프=안성규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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