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양봉가가 장가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험준한 산골에서 12년동안 재래종 꿀벌을 쳐온 노총각 장님 양봉가가 장님의 두눈이 되겠다고 자청한 처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강원도 춘성군 동면 품걸2리1반 가리산계곡-. 26일 하오 품걸분교 어린이들의 『고향의 봄』 축가가 울려 퍼지고 1백여명의 이웃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님 신랑 박광호씨 (38)와 신부 유경순양(26·미용사·서울성북구종암동)은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쓴 구식혼례를 올리고 새삶을 다짐했다.
박씨는 4세때 어머니를 잃고 눈병과 영양실조등이 겹쳐 실명, 가난한 집안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26세때 l백50원으로 꿀벌 1통을 사 마을 뒷산에 움막을 짓고 처음 양봉을 시작했다.
박씨는 눈을 떠야 남들처럼 잘 살수 있다는 집념으로 개안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벌치기를 시작한 것.
12년째가 된 이제 박씨는 산속에 흩어진 80개의 벌통을 보지 않고도 훤히 알며 벌들의 날개소리만으로도 움직임을 알아 연간 2백만원의 수입을 올리게 됐다. 박씨는 수술비틀 모아 지난 1월 서울 이대병원에 개안수술을 받으러 갔으나 너무 늦어 수술을 해도 광명을 찾을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시 실의에 찬 박씨의 얘기가 방송에 보도되자 박씨와 결혼해서 두눈이 되겠다고 자청한 처녀가 전국에서 1백15명이나 됐다. 박씨는 망설이다 서울의 유양을 신부로 택한것.
박씨는 광명을 찾지는 못했지만 노총각을 면했고 두눈이 될 신부를 맞아 이젠 신부를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착하게 살겠다고 용기를 냈다.
【춘천=이희종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