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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 연 채 가스관 용접 … 방화셔터도 작동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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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6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건물이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이 화재로 자정까지 7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 48명이 경상을 입었다. 화재는 이날 오전 9시쯤 지하 1층 음식점 공사현장에서 발생해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화재가 난 터미널 건물은 대형할인매장과 영화관 등을 갖춘 지하 5층, 지상 7층, 전체 면적 2만여㎡ 규모로 2012년 6월 개장했다. [뉴스1]

26일 오전 9시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 리모델링 공사 현장. 용접기사 성모(50)씨가 용접기에 불을 붙였다. 푸드코트 내 점포에 가스관을 연결하기 위한 용접을 하려는 것이었다. 용접기를 가스관에 들이대는 순간 불길이 천장으로 치솟아 옮겨붙었다. 사고를 조사 중인 일산경찰서에 따르면 성씨는 “가스 안전밸브를 잠그지 않고 작업하는 바람에 가스가 새어나와 불이 붙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성씨는 소화기로 불을 끄려다 불길을 잡지 못하자 119에 신고하고 대피했다.

 오전 9시2분 신고를 받은 소방본부는 4분 뒤 현장에 도착해 오전 9시29분 불을 껐다. 불이 꺼지기까지 약 30분 새 불길은 1층까지 번졌다. 유독성 연기는 건물 전체로 퍼졌다. 2층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고교생 김서준(17)군은 “매표소에서 2m 떨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며 “동시에 경보와 대피 안내방송이 울려 대합실에 있던 50여 명이 일제히 비상계단 표시가 있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오전 9시 문을 연 지하 2층 홈플러스 직원 조송희(25)씨는 “문을 연 직후에 무빙워크를 통해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흘러 내려왔다”고 말했다.

 당시 건물 안에는 버스 승객과 영화 관람객, 공사 인부 등 700여 명이 있었다. 대부분은 바로 나온 안내방송에 따라 대피했으나 2층 사무실에 입주한 K운수업체 이모(50) 지사장 등 7명은 유독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27일 0시 현재 부상자는 54명이다. 이 중 6명은 중상이어서 사망자가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불이 난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작업하던근로자 80여 명은 모두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는 터미널과 지하로 연결된 수도권 지하철 3호선 백석역까지 번져 승객들이 대피했다.

 그나마 경보가 일찍 울리고, 입점업체 직원들이 고객 대피를 유도해 피해를 줄였다. 5~7층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던 관람객 50여 명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연기가 차지않은 옥외 피난계단을 따라 빠져나왔다. 직원들은 관람객이 모두 안전하게 탈출한 것 을 확인한 뒤 건물에서 나왔다. 대합실에선 버스 기사들이 “이리 오라”며 허둥대는 탑승객들을 이끌었다.

 희생자와 부상자가 있는 병원에는 연락받고 온 가족 100여 명이 몰렸다. 오후 1시 일산병원 응급실에 뛰어들어온 희생자 김모(48·여)씨의 딸은 응급실 직원이 “장례식장으로 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 자리에 굳어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역시 희생된 이 지사장의 부인은 “한 달 전 승진해 왜 하필 이리 발령받았느냐”며 오열했다.

 ?귀화 중국인 아들 사망=중국인 김탑(38)씨도 희생됐다. 부모는 2000년 한국에 들어와 귀화했고, 김씨는 중국 국적을 유지하며 울산의 국내 업체에서 일했다. 이번에 일산으로 가족을 보러 왔다가 변을 당했다. 어머니 김수안(50)씨는 “아들이 올겨울 10년 사귄 여자친구와 제주도에서 결혼할 예정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탑씨의 아버지는 2012년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고양=윤호진·이서준·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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