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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국교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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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홍콩」 수준에서 중상층으로 생활에 여유를 갖고 사는 교포는 기껏 5∼6명 정도에 그친다.
일찌기 주재원으로 나왔다가 귀국을 않고 눌러앉아 돈을 번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은 과거 대농주재원으로 와서 돈을 벌어 성공한 손한주씨 (40).
「홍콩」 「사이드」에 있는 「스와이어·하우스」에 「대공」이라는 현지 회사를 차리고 있는 손씨는 원래 직물이 주였으나 지금은 온갖 상품에 손대고 있는 건실파 실업인 교포.
연간 대 「홍콩」 수출에서 1천2백만 「달러」어치가 손씨의 회사를 통해 「홍콩」에 수출되니 그의 재력은 짐작할수 있다.
과거 대농주재원으로 있을때 다듬어 놓은 중국인 상인과의 인간적인 접촉을 축재의 기반으로 삼았다고 한다. 「찰리·장」씨는 아리랑·서울 「하우스」 등 2개 음식점을 소유,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른바 「샹하이」귀환동포중의 한사람-. 「홍콩」재계를 상해의 성 「요한」대 출신이 잡고 뒤흔드는 까닭에 장씨는 「홍콩」 재계에 발이 넓고 퍽 사교적이다.
그가 뒤늦게 한국어를 다시 배우고 굳이 한국말을 쓰는 까닭은 조국의 경제성장이 가져다 준 각성이라는것이 일부 교포들의 분석이었다.
60년대말 미성 「핸드백」에 관계하다 대 「홍콩」 수출촉진과 시장개척을 위해 「홍콩」에 온 박순영씨는 한국인의 고급심리에 착안, 꽤 많은 돈을 번 것으로 교포사회에서 소문나 있다.
주재원 자격으로 출국해서 「홍콩」에서 생활터전을 잡은 박씨는 사치풍조에 편승, 「크리스티앙·디오르」 특약점을 열어 돈을 번것이다.
박씨의 이른바 백화점은 최근에 구룡의 「미라마·호텔」에 초호화판 상점을 연 것까지 합쳐 3개나 된다. 「홍콩」 교포 전복기씨 (53·안도무역공사대표)는 교포사회에서 착실한 재기파의 표본으로 존경받으며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11년째 「홍콩」에 사는 전씨는 한국의 조미오징어·라면·새우깡·껌등 식품의 대 「홍콩」시장 진출과 개척의 선구적 공로자.
「홍콩」 이야기에서 빼놓을수 없는게 한국인 경영의 잡동사니 「쇼핑」 가게인 속칭 「백화점」이다. 이들 가게는 문자 그대로 일반 백화점이 갖추고 있는 물건을 다 갖춰서 팔고 있는게 아니고 「쇼핑」을 위해 잠시 이곳에 들르는 한국인 여객이 즐겨 찾는 것만 판매하는 곳이다. 「두남」 「신한」 「동보」 「책와」 「남양」 「로얄」양행등 이른바 한국 교포경영의 「쇼핑」 가게는 자그만치 10여곳이나 된다.
대부분이 구룡쪽에 자리잡은 이들 가게는 주종 품목이 「피에르·카르댕」 「세리누」 「크리스티앙·디오르」 상표의 「머플러」·「핸드백」·구두를 위시해서 「뒤퐁」과 「던힐·라이터」·일제「카메라」·「소니」 전자제품·「세무·잠바」 우황청심환, 간·고혈압·당놋병약등 한국인 여객이 즐겨찾는 인기품목으로 한정돼 있다.
과거 월남 「붐」으로 재미를 봤던 속칭 이들 「백화점」은 근년에 와서 중동 「붐」이 일어 왕래 여객이 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부 가게에서는 직원을 매일 「카이탁」 공항에 내보내 중동 손님이나 일반 여행자를 「호텔」로 안내하고 「쇼핑」·관광「가이드」까지 해주는 친절을 베푼다.
장사가 잘 된다니까 요즘에 와서는 한국에서 자본을 끌어다가 이와같 은 「쇼핑·센터」를 개설하려는 사람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활약중인 배우 남석훈씨도 지난 15일 「홍콩」에 있는「그랜드·호텔」 옆 항생대하에 이와 유사한 가게를 열었다.
이곳에서 한국 음식값이 일본음식 다음으로 비싸지만 비교적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이유는 「홍콩」 사람이 한국음식을 먹는 것을 자기들딴으로는 일종의 사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
한국식당이 돈벌이가 된다고 하니까 「코리언」식당에서 근무하던 현지인「쿡」이 독립해서 차린 음식점이 「홍콩」에 2개, 구룡에 2개 모두 4개소에 이른다.
현지인 경영의 한국 음식점을 합쳐 「홍콩」에는 아리랑·이화원·금성식당·백화원·「킴스·레스토랑」·장원·만발·한국반점(이상 구룡소재)과 「코리언·클럽」(교민회의뢰위탁경영)·고려원·서울「하우스」·「코리아나」 (홍콩소재)등 16개소가 성업중이다. <끝>【홍콩=이창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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