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무엇이 한국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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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우리가 흔히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제적」이란 말과 상대적인 것이면서 서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금년에 와서 정신적으로나 표현양식으로나 우리 문화의 패턴을 한국적인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구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김=한국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다 한국의 체취가 배어있게 마련이지만, 그동안 우리가 서양문화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보고 받아들여온 탓으로 이제 우리 나름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것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각현상으로 해석됩니다. 그럼 서양사람이 하는 것, 일본사람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림에서 백자항아리나 이조가구를 그린다든가, 건축에서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두꺼운 지붕을 얹는 것이 과연 한국적인 것일까요. 사실 지금 우리는 예스러운 것에의 복귀를 한국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그런 작품이 국전 같은데서 상타는 것을 보면 다분히 사회적 취향의 반영이라 할 수 있읍니다. 사회분위기가 전통적인 것을 요구하니까 그러한 소재를 다루면 한국적이다―하는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문화의 참다운 가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고 자기의 상상력과 조형능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소재만 갖고 한국적이란 생각은 커다란 오해가 아닐 수 없읍니다.
물론 박수근씨의 경우는 철저하게 한국인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림으로서의 독창성과 현대방법을 구현했읍니다. 마티에르와 순수한 조형적 구성 및 색채 등이 서구 것에 못지 않으면서도 누가 봐도 한국적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나아가 추상화에 있어서도 그런 한국적 감성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김=한국적이다 창조적이다 하면 외국에 없는 특이한 양식 같지만 창조행위로서의 예술에 있어 한국적인 것은 바로 국제적인 것이죠. 그러면 전통을 창조행위에서 어떻게 계승해 살리느냐, 전적인 완전창조란 불가능하지 않느냐,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간다든가 과거를 흉내내고 재현하는 것은 도리어 전통을 파괴하는 게 아니냐, 오히려 우리의 역사적 미술이 존재하는 것은 항시 과거에 저항해서 새롭게 창조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통을 알고 그 테두리를 뛰어넘었던 것이지요.
이=그렇죠. 정신적 내면과 필연성의 면에서 과거에 구속되지 않고 저항하고 반발하는 작가에 의해 궁극적으로는 전통이 계승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김=그래서 나는 우리 전통문화의 기조적 정신과 방향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①우리 전통문화의 저변에는 저항정신이 깊이 깔려 있고 ②해학과 자연에서 오는 따뜻함과 친근감 같은 사랑이 스며 있으며 ③꿈 비슷한 환상이 젖어있고 ④무속적인 것이 아닌,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 믿음이 있고 ⑤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는 점등입니다.
이런 점은 정통화나 민화에 똑같이 보이며 그런 정신과 조형감각을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방향도 자명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이=하지만 우리문화의 특징이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것인데, 그런 한국적인 따스함이나, 자연에의 순응 같은 측면에만 항상 가치부여를 해야하느냐, 오늘의 문화현상은 다국적이고 다양하며 과거의 사고방식으론 지탱할 수 없는 시대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김=시대를 대표하는 좋은 작자라면 어떤 형태의 표현이었든 한국적인 기품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전위와 실험적 작업이라 하더라도 한국인의 냄새는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무국적의 표현이 되고 유행적인 형식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그러면 유형의 전통이라할까, 구체적인 형식면에서 검토했으면 합니다. 가령 편의상의 용어로 동양화라고 합시다.
아직 우리 사회에 동양화를 찾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중에서도 산수화나 문인화풍의 화조가 잘 팔리지만 거기엔 오늘의 정신이 전혀 결여된 것이 태반입니다.
또 일부 민화 풍의 그림을 그렸다해서 그게 한국적이냐? 이야말로 전통에 대한 극심한 오해이며 예술적 측면에서의 감동이나 놀라움도 우리에게 주지 못합니다.
김=서양화는 일반적으로 그 나름대로 모색하고 애쓰는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에 비해 동양화는 너무나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화원으로서의 기교조차 사뭇 뒤떨어지는데다가 뼈를 깎는 노력도 없이 곱고 눈에 들게 만드는데만 급급하니 말입니다.
이=결론적으로 문화적 식민지현상을 극복하자는 게 오늘 얘기의 초점이 되겠읍니다. 경제적으로 우리 나라도 남에게 주고 대등하게 살려는 성장시대에 접어들었으므로 예술면에서도 형식의 답습이나 모방에만 머무를 수 없고 정말 한국적인 정신내면을 갖춘 좋은 작가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중앙미술대전은 이런 점에서도 획기적인 자리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정리=이종석 기자】

<차례>
①한국미술 60년의 반성
②무엇이 한국적인가
③추상과 구상이라는 것
④민전이 지녀야할 문제의식
⑤내일을 위한 발굴·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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