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 선도국 되려면 R&D 투자 실패 용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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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이 기술 선도자(First Mover)가 되려면 기업의 연구개발(R&D) 실패를 용인해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앨리스터 놀런(사진) 수석 정책분석관이 한국의 창조경제 정책 성공을 위해 내놓은 핵심 조언이다. 그는 22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기술평가관리원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K-테크 글로벌 R&D 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한국 산업기술정책 리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포럼에는 OECD를 비롯해 ▶미국 국방부 ▶영국 옥스퍼드대 ▶BPI프랑스 소속의 해외 석학과 국내 전문가 200명이 참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율은 4%로 이스라엘(4.4%)에 이어 세계 2위다. 하지만 투자 규모에 비해 R&D 생산성·개방성은 낮다. 예를 들어 인구 100만 명당 특허수가 34.3개로 일본(107.2개)·스위스(89.5개)의 절반도 안 된다. 글로벌 기술 협력 비중도 1.3%로 10~20%대의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그는 창업자·중소기업 R&D 평가 때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관행을 문제로 지적했다. 평가위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다소 창의성이 떨어지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큰 사업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놀런 분석관은 “실패 확률이 크더라도 성공했을 때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사업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며 “최선을 다했다면 실패 후 재도전할 때에도 불이익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자금 지원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R&D 자금 지원대상 선정은 평가 시간이 20분밖에 안 될 정도로 형식적이다. 평가위원에게 미리 자료를 낼 수도 없다 보니 사업계획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부족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번 검토한 뒤 선정하는 선진국(프랑스 8주, 영국 17일)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개별 자금 지원 이외에 큰 틀에서의 정책 지원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게임 벤처회사와 같은 소규모 기업에 대한 R&D 세제 혜택이 대표적이다. 놀런 분석관은 “창업 초기기업을 위한 모태펀드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크라우드펀딩(인터넷을 통한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자금 모집)에 대해서는 “사업 검증이 어려운 데다 투자자 손실이 우려되기 때문에 OECD 국가는 대부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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