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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넘나드니 스릴 만점, 모닥불 피우니 얘기꽃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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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스쿨 참가자들이 경북 울진 굴구지마을 앞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웃도어스쿨 11번째 수업을 위해 오지 계곡으로 갔다. 경북 울진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서 왕피천을 따라 올라간 뒤 모래톱에서 야영했다.

하룻밤 지낼 식량과 장비를 챙겨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험했다. 허리까지 빠지는 계곡을 넘나들고, 고무보트를 타고 한 길이 넘는 웅덩이를 건넜다.

힘든 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백패킹(Back Packing)이었다. 아웃도어 전문 다큐멘터리 감독 이정준(46) 강사와 오지 백패킹을 함께했다.

지난 11일 경북 울진 왕피천, 백패킹 참가자들이 키가 넘는 깊이의 용소를 고무보트를 이용해 건너고 있다.
백패킹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참가자들.

전국에 몇 안 남은 오지마을 ‘굴구지’

국내에서 오지로 남아 있는 마을이라고 해봐야 이제 몇 곳 되지 않는다. 전기 없는 마을은 거의 사라졌고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마을도 손에 꼽을 정도다. 굴구지마을은 경북 울진 왕피천 계곡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는 외딴 마을이다. 굴구지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십 리(里) 밖에 있다. 바다 쪽에서 아홉 고개를 넘어야 마을에 닿는다 해서 구고동 또는 굴구지로도 불린다.

지난 10일 오후 3시 굴구지마을 입구에 이정준 강사를 비롯해 아웃도어스쿨 참가자 10명이 모였다. 서울에서 울진 읍내까지 내려온 뒤 읍내에서 장을 보고 마을까지 들어오는 데 8시간 가까이 걸렸다. 버스는 안 다니지만 자동차로 들어갈 수는 있었다.

마을 앞 계곡에 놓인 돌둑이 트레킹 시작점이다. 징검다리보다 더 뭉툭한 돌로 쌓은 둑은 예전 굴구지마을 사람들이 왕피천 건너 울진읍으로 나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총총걸음으로 뛰어야 건널 수 있다.

돌둑에서 4㎞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막이 콘크리트 보가 나오고, 그 위로 모래톱이 있다. 첫날 목적지가 이 모래톱이다. 십 리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했다.

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다. 왕피천을 자주 다닌 이정준 강사가 앞장서며 길을 열었다. 뒤이어 참가자들이 일렬로 걸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편편한 암반지대를 찾아 걷고, 때로는 수풀지대를 지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가장자리는 그나마 나았다. 걷기 힘든 직벽이 나타나면 온몸을 물에 담그고 계곡을 건너야 했다. 진정한 계곡 트레킹이었다.

“배낭이 젖으면 안 되니까 허리까지 물이 차는 곳은 배낭을 머리 위로 바짝 들어 올리세요. 물이끼가 낀 어두운 바위는 미끄럽습니다. 앞사람이 밟는 자리를 밟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이정준 강사가 당부했다.

5월의 왕피천에는 아카시아꽃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활짝 피어 있었다. 꽃 향기가 진동했다. 참가자들은 물을 헤치며 전진하느라 뒤뚱뒤뚱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잠시 멈춰 향기를 음미했다.

계곡을 넘나들다 보니 상의까지 젖었다. “차가워” 소리가 저절로 났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여서 심하게 추위를 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해요. 배낭을 메고 계곡을 건너는 건 처음이에요.” 여성 참가자 홍장미(28)씨가 말했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도전은 계속됐다.

계곡을 따라 1시간쯤 올라가니 오른편으로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났다. 상류에 있는 물을 끌어내리는 농업용 수로였다. 계곡에서 둑으로 올라 수로 안으로 들어갔다. 물살이 거세 계곡보다 힘들었지만 스릴도 있었다. 걷는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다. 야영 준비를 위해서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야 했다.

500m쯤 걸어갔을까. 콘크리트로 막은 제방이 보였다. 그 위로 모래톱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야영하기에 딱 좋았다. 첫날 트레킹 시간은 약 3시간. 계곡이라 길이 구불구불해서 예상보다 더 걸렸다.

부싯돌로 불을 피우다

옷이 젖은 우리 일행을 보자 굴구지마을 윤석중(51) 이장이 주변에서 마른 나무를 구해와 불을 지폈다. 이장은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이날 아웃도어스쿨 안전요원을 자청했다. 그는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미리 야영 장소에 와 있었다.

간단하게 밥을 지어먹고, 모닥불 옆에 두런두런 마주 앉았다. 이정준 강사가 백패킹을 할 때마다 배낭 안에 넣고 다닌다는 ‘마술상자’를 열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구급약을 비롯해 서바이벌 장비들이 들어 있었다.

“부싯돌은 백패킹을 할 때 가장 기본입니다. 배낭이 모두 젖어 라이터나 성냥으로 불을 피울 수 없을 때 필수 장비죠.”

그는 작은 톱으로 마른 나무를 켜 톱밥을 낸 다음 휴지에 놓고 불을 지폈다. 참가자들이 이 강사의 부싯돌로 불을 붙여봤다. 부싯돌과 부시쇠를 잘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휴지가 아니라 나뭇잎 위에 붙이는 건 더 어려웠다. 차정은(32)씨가 밤새 부싯돌을 켰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최영재(22)씨도 이튿날 아침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부싯돌을 들고 복습을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삼삼오오 모닥불 앞에 앉아 보내는 밤은 백패킹 중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일 것이다. 바람이 일렁이는 모닥불과 불 그림자, 달빛과 별빛이 모두 있었다.

이튿날은 야영지에서 용소(龍沼)를 지나 굴구지마을로 되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야영지에서 용소까지 거리는 1㎞가 되지 않았다. 계곡을 두 굽이 정도 돌아가니 오른편으로 산불감시용 초소의 지붕이 보였다. 족히 50m는 됨직한 너른 소와 모래톱이 눈앞에 나타났다. 용소에 도착한 것이다.

이정준 강사의 배낭 속 백패킹 준비물.

“여기는 깊이가 3m가 넘는 곳입니다. 직벽이라 길이 없어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제가 가져온 고무보트를 이용해 건너는 겁니다.”

바람을 넣지 않는 상태의 고무보트는 한 사람이 메고 갈 수 있는 부피였다. 최영재씨가 야영지에서 여기까지 메고 왔다. 펌프를 이용해 부풀리니 작은 배가 됐다. 가운데에 시트가 있어 성인 1명 정도 태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먼저 이정준 강사가 배를 끌고 용소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는 오리발과 물안경까지 준비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 다음 바위에 로프를 묶었다. 그리고 로프 중간 지점에 다시 보트를 묶었다. 양쪽에서 로프를 잡아당겨 보트에 탄 사람과 배낭을 수송하려는 것이었다.

작업은 착착 진행됐다. 다들 무서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참가자 중에서 해병대 출신인 정형조(29)씨는 보트 옆에서 여성 체험자를 에스코트하며 건너오기도 했다.

용소는 지름이 50m나 돼서 로프를 써도 한번에 이동하기 어려웠다. 도강은 한 번 더 이뤄졌다. 참가자들이 처음보다 더 능숙하게 움직였다. 용소가 시작되는 폭포에서는 물살이 세 애를 먹었다. 참가자들이 협심해 무난히 건널 수 있었다. 계곡물은 아직 찬 편이었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옷을 벗어 몸을 말렸다. 볕을 받아 따뜻해진 바위에 몸을 밀착하기도 했다.

용소를 건너 조금 더 가면 학소대다. 용소처럼 보트나 로프를 이용해 건너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학소대 입구에서 돌아 나왔다. 학소대를 건너 초소 방면으로 산비탈을 올라가면 트레일이 나온다. 서쪽으로 가면 왕피리, 동쪽으로 나오면 굴구지마을이다.

초보자 가이드

◆ 장비= 오지 백패킹을 위해서는 기본 야영 장비 외에 몇 가지를 더 준비해야 한다. 보온 의류와 장갑·양말·헤드랜턴 등은 여분으로 한 개씩 더 준비한다. 작고 가벼운 것일수록 좋다. 지도와 휴대전화 등은 방수 가방에 넣어야 한다. 공기 주입식 매트리스나 베개는 물을 건널 때 튜브로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생존 장비 박스를 따로 준비해 정수기와 손도끼·톱·의약품 등을 넣어두면 좋다. 부싯돌은 마그네슘 소재가 좋으며 온라인 장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은 1만원 안팎이다. 계곡 백패킹을 위한 고무보트는 가로·세로 1m 남짓이며 무게는 7㎏ 정도다. 전용 가방에 넣으면 짊어지고 이동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물살이 센 곳은 오리발을 이용하는 게 좋다. 이 밖에도 로프·펌프·구명조끼 등을 갖춰야 한다. 고무보트는 온라인에서 40만~5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 왕피천 백패킹= 환경부가 생태경관보존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콘크리트 보가 있는 모래톱에서 야영할 수 있다. 보 상류 지역은 야영금지 지역이다. 왕피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과 굴구지마을 상천초소에서 상류로 가는 등산로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

※ 아웃도어스쿨 마지막 수업은 ‘야간 트레킹’입니다. 네파 익스트림팀 구은수 강사와 함께 6월 14∼15일 인천 강화도에서 진행됩니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홈페이지(school.nepa.co.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선발 인원은 10명입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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