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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대지진 때 자식보다 학생 챙긴 일본 교수 … 훈련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1998년 유학 길에 올라 도쿄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에 살고 있는 김지영(35·여)씨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습니다. 당시 전철 운행이 마비되는 등 비상 사태가 벌어졌는데 다행히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 즉시 딸을 데리러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오지 못한 부모도 많았는데, 유치원 교사들이 학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 대기하더랍니다. 김씨가 다닌 대학원 지도교수의 모습은 더 놀라웠습니다. 그 교수도 아내로부터 자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그래도 난 귀가할 수 없다. 아이는 학교에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대학원 학생들의 안부를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다는 겁니다. 김씨는 “일본 사람들은 재난에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특히 교육기관의 대비 시스템이 감탄할 만하다”며 “학교에 방재용 물품과 저수탱크 등이 구비돼 있어 비상시 학교가 대피소로 바뀌고, 교사는 학생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소개합니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달리 자신의 자녀도 학교가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본분을 다하는 일본 교수의 자세는 혼돈의 순간 리더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리더들이 짜놓은 일본 학교의 재난 대비 시스템도 부럽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 이후 학생 안전교육 강화 방안이 마련 중인 지금 장관·교육감·교장·교사 같은 리더들부터 재난 훈련을 직접 받았으면 합니다.

 서울시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최근 소방훈련에서 완강기(緩降機) 사용법을 시연한 자리에 나간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완강기는 화재로 통로가 막히면 창문을 통해 몸에 밧줄을 매고 땅으로 천천히 내려갈 수 있도록 3층 이상 다중이용 시설에 설치되는 장비입니다. 생전 처음 완강기를 다뤄본 이 관계자는 “줄을 허리에 묶으려 했더니 도저히 안 되던데 알고 보니 머리에서부터 끼우는 것이더라”며 “훈련받지 않았다면 불이 난 건물에 완강기가 있어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훈련 후 그는 집에 소화기가 있는지 확인했고, 한쪽에 방치된 소화기가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발견해 교체했다고 합니다.

 안전교육 방안을 짜야 할 리더들부터 훈련을 받아야 왜 안전교육이 필요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또 다른 일거리가 아니라 나와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소명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기차에 오르다 신발 한 짝을 플랫폼에 떨어뜨렸는데, 이미 기차가 움직여 주울 수 없게 되자 황급히 나머지 한 짝을 벗어 플랫폼으로 던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 묻자 “저렇게 두 짝이 돼야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고, 가난한 이가 주우면 더 좋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머문 진도체육관에 들어서던 국무총리에겐 눈물을 닦아달라며 매달리는 손길 대신 물병이 날아왔습니다. 우리 사회 리더에 대한 신뢰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참사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인 리더들이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 화재 훈련을 받아보면서 간디와 같은 혜안을 발휘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김성탁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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