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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춘씨를 구출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필리핀」에서 회교도 반란군에 납치된 박화춘씨의 구조전망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필리핀」당국과 박씨가 소속한 미국 회사가 박씨 구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한 이유다.
박씨를 납치한 반도측은 20만「달러」의 몸값을 요청하고 있으나「필리핀」당국은 돈을 주고 풀려나는 선례를 막기 위해 몸값 지불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박씨가 소속된「펨코」사측도 몸 값 지불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포로」민족 해방전선이란 단체 휘하의 이「게릴라」들은 최근 들어 민간인들에 대한「테러」활동을 강화하여「필리핀」기독교도를 납치, 몸값을 요구했다가 살해한 적도 있다.
그러한 전례에 비추어 원만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박씨의 생명은 극히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겠다. 「게릴라」들의 이러한 만행은 세계여론의 규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혁명 아니라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소행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소행은 어느 때 어떠한 기준에서도 죄악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서 박씨를 구출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최선의 방법이 불가능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차선의 방법으로는 대체로 두 가지 길이 상정되고 있다.
인도적인 견지에서 몸값을 주고라도 피랍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로는 그런 사건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피랍자의 희생을 불사하는 기계주의적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다. 천지간에 가장 귀중한게 사람이고 모든 조직과 제도가 모두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것일진대 사람의 생명을 우선 구해놓고 봐야 한다는 첫 번째 방식이 문화적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필리핀」당국과 박씨의 소속회사인 미국의「펨코」사측의 소극적인 태도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펨코」사측이 몸값 20만「달러」지불을 꺼린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만「달러」가 적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그렇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고창해 온 미국인들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만일 납치된 사람이 미국인일 경우에도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쯤「펨코」사 뿐 아니라 미국 정부가 나서서「필리핀」당국이 무슨 소리를 하든 피랍자를 구출해내고 말았을는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몸값을 지불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를 꺼리는「필리핀」당국의 고충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러한 비당국의 입장은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피랍자를 구출할 수 있는 전망이 설 때까지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필리핀」당국이 무리한 원칙만을 고집하다가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박씨의 생명을 잃게 한다면 사후적으로「적정한 국내적 구제」를 회피한 국제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도 박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값의 대불까지를 포함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하겠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사건을 거울삼아 증대 일로에 있는 해외진출 근로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한 사전·사후 대책 강구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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