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의 증언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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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동선 사건과 관련된 최근 미 의회내의 일부 움직임은 상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원에 비해 하원 쪽이 더욱 그런 편이다.
미 하원 윤리위는 이 사건에 대한 한미 양국 정부간의 합의 성명이 발표된 직후 의회 증언을 요구하면서 박씨에 대한 소환장 발부 사실을 공표한 바 있다. 이어 며칠 전에는 박씨와 김동조 전 주미 대사 등을 의회에 출두시키지 않으면 대한 군원을 중단하겠다는 다분히 협박조의 결의안까지 내놓고 있다.
상원에도 박씨와 한국 관리들을 상원 윤리위 신문에 응하도록 하라는 결의안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 의회의 움직임은 어느 모로 보아도 부당하다.
우선 미국 정부간에 외교 경로를 통해 합의되어 「카터」대통령도 만족해한 일을 놓고 미 의회가 직접 상대국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이 국제관례상 있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내 체제가 어떻든 외국에 대해 한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은 그 나라의 정부다.
만약 그 나라의 정부가 의회의 의사와 배치되는 외교 교섭을 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문제로서 미국국내에서 해결되어야 하는게 순서다.
우리국민인 박씨를 미국의 검찰관과 공동으로 조사하고 미 법정의 증언을 위해 도미시킨다는 합의마저도 우리로선 상당한 양보를 한 것이었다.
우리측의「상당한 양보」를 통해 양국 정부간에 합의된 것조차 완전히 무시하고 나오면 그들 미 의원들은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것인지, 다른 저의를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또 그러한 증언 요구나마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방법으로 제기해오면 그런 대로 이해될 구석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군원 중단까지 들먹이는 미 하원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고압적이다.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이 일치했기 때문에 지속되어 온 대한 군원을 이렇게 훨씬 사소한 일의 무기로 이용하겠다는 건 본말전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대를 불쾌하게 할뿐 아니라 미국 스스로의 체통을 실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미 의회의 고압적 움직임은 우리의 국민 감정을 자극해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 없게 만들 우려마저 없지 않다.
많은 나라가 대미「로비」활동을 했는데도 유독 한국의「로비」활동이 큰 물의를 일으키게된 배경의 하나로 그 동안 흔히 문화적「갭」이 손꼽히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미 하원의 고압적인 태도에서도 한미간의 문화적「갭」이 느껴진다.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들간에 중시되는「체면」이란 것에 대해 너무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현재 박씨에 대한 한미 공동 조사가 진행 중인만큼 박씨의 도미는 어차피 앞으로 2개월 정도 지난 뒤의 일이다.
그렇다면 박씨의 도미 의회 증언 여부도 그렇게 촌각을 다룰 만큼 꼭 급하게 결정해야만 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박씨의 미 의회 증언 문제는 그 자신의 의사에도 상당히 좌우될 뿐더러, 한국 정부도 전혀 융통성 없는 태도는 아니라는 시사가 없지도 않았다.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최근일부 미 의원들의 거조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단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서로간에 이 불행한 사건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호의적인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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