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연극|여석기 교수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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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극 70년을 맞는 금년 연극계는 그간의 한국 연극을 반성, 새 좌표를 찾아야한다는 점에서 예년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4월초 문화회관 준공과 함께 소극장에서 열릴 신극 70년의 대표작 공연계획은 연극의 발자취를 음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연극평론가 여석기 교수(고대·영문학)도 극단마다 최소 1편씩의 기념공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며 금년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같은 특별한 의미를 제외하면 금년의 연극계도 예년과 다름없이 명암이 엇갈리는 다사다난한 한해가 될 것이라는 여 교수의 예견이다.
여 교수는 금년 연극계의 가장 고무적인 사항으로 창작극의 대량공연을 예로 들었다. 이 같은 전망이 가능한 이유는 ①신극 70년 공연과 대한민국 연극제 참가공연의 대부분이 창작극 공연이라는 점 ②작년에 이어 소설가·시인 등이 극작 활동에 더욱 깊이 관계하리라는 점 ③번역극 「레퍼터리」의 고갈 ④이미 발표된 각 극단의 금년도 「레퍼터리」가 40%가까이 창작극이라는 점 등이다. 이 같은 전망의 구체적 증거가 현재 극작가마다 3∼4편의 작품주문을 각 극단으로부터 받고 있다는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여 교수가 보는 두 번째 낙관적 사항은 30대 소장 연출가의 괄목할만한 진출. 작년 전체공연의 45%가 30대 연출가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이 같은 경향의 심화현상이 금년에도 두드러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서울에서 「히트」한 작품은 지방 공연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불문율이 성립돼 가고 있어 관객의 저변 확대와 안정세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낙관적이진 못하지만 명동「코리아」극장을 통한 상업극의 안착여부가 지난해 하반기의 시험을 거쳐 금년 중에 판가름 날 고비에 있다고 말했다.
연극의 해외교류는 최소 작년 수준은 유지될 것이라는 여 교수의 진단이며 동랑「레퍼터리」극단과 한국 가면극 연구회가 순회공연 계획을 밝혔고 「아더·밀러」등의 외국연극인이 내한하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희망적인 관측을 송두리째 뒤엎을 어두운 면이 연극계의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여 교수의 또 다른 문화기류 진단이기도하다.
여 교수가 가장 염려하는 복병은 공연법에 의해 존폐기로에 놓인 소극장 문제.
금년 6월까지 건축·소방·위생 등 관계법대로 극장환경을 개수토록 지시 받고 있지만 연극전용 소극장의 영세성 때문에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특히 「세실」극장은 부근에 주택이 없음에도 불구, 주거지역이라는 지목 때문에 극장이 문을 닫아야 될 형편에 놓인 것은 형식주의의 횡포라는 인상이다.
이와 함께 정회원극단이 대폭 증가될 전망(준회원극단 중 4개가 승급신청 중)에 따라 공언장의 절대수 부족이 예상된다고 여 교수는 밝혔다. 문화회관별관(옛 국회)의 경우 작년에는 한 극단에 대해 2회 정도의 공연기회가 배정되었으나 금년에는 1회로 감소되고 그나마 22개 극단(준회원은 추첨에서 제외)이 제비뽑기를 하는 소동을 치렀다. 「세실」극장도 준회원극단의 진출로 봄·가을「시즌」에 제비를 못 뽑은 극단들이 관객이 감소되는 여름으로 공연 일정이 잡혀져 벌써부터 공연을 비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극외적인 문제 때문보다도 전체 연극계를 더욱 어둡게 전망토록 만드는 요인을 여 교수는 「연기자의 절대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연기자를 준·정회원으로 나눠 구분하고 또 소속배우의 타극단 출연 조건을 까다롭게 만드는 것도 연극발전과 관련, 고려할 문제라고 말했다. 『아뭏든 이 땅에 연극이 뿌리를 내린 지 70년이 다 되도록 우리연극의 주체적인 방향설정이 미완되고 극장문제 등으로 창조적인 연극예술활동에 연극인이 몰두하지 못하는 상황이 금년에는 해결돼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젊은 연극인들이 왕성한 연극행위를 통해 창작극 공연이 활발해지고 관객의 안정세 유지는 연극의 발전에 희망적으로 진단돼 기대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라는 여 교수의 결론이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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