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무상급식 바꿀 때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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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무상급식·무상보육 정책을 지금처럼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조정이 필요한 단계인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학교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야당과 진보진영이 무상복지를 들고나와 유권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관심이 전체 지방선거의 승리로 이어질 만큼 폭발력이 컸다. 당시 핵심인물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경선 과정에서 ‘무상버스’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경선에서도 패하는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무상급식·무상보육 정책을 조정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반된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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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보다 안전 확보 시급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교육학

무상급식 논쟁의 기원은 멀리 2007년 경남 교육감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가 초·중학생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의 교육감 후보들도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 후보 역시 무상급식 공약을 내세우면서 논쟁이 확산되었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의 타당성 논쟁으로 번졌다. 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이 핵심공약으로 등장했으며, 여기에 고교 무상교육과 초등 돌봄교실이 더해졌다.

 교육복지 논쟁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무상급식정책은 대부분의 시·도가 도입한 지 4년이 지났고, 길게는 7년이 지났으므로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상급식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따져본 후 무상급식 위주의 교육정책을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무상급식 찬성의 논거는 의무교육 무상론, 낙인효과 방지론, 가계부담 경감론 등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무상범위를 확대했고 낙인효과를 줄였으며 가계부담을 어느 정도 경감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무상급식 반대의 논거는 복지 포퓰리즘론, 타 교육예산 잠식론, 급식의 질 저하론 등이었다. 무상급식이 무상복지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며, 급식비를 통제함으로써 급식의 질 개선을 가로막는 결과가 되었다. 무상급식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예상했던 대로 다른 교육예산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교육예산이 줄어든 것이 모두 무상급식 탓은 아니다. 사업비 규모로 볼 때 학교예산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2012년부터 시작된 무상유아교육·보육(누리과정)이다.

 무상급식의 성과와 문제점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지만, 무상급식의 성과는 더 커지기 어려운 반면 무상급식의 문제점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무상급식이 교육복지 확대를 촉발해 행정수요를 늘림으로써 학교 비정규직 증가를 초래했고 이는 곧바로 교육복지에 대한 관리예산의 증가로 이어져 큰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 교육복지예산 총액은 늘었으나 선택적 복지사업에서는 오히려 혜택을 보는 학생이 줄어들거나 혜택 자체가 줄어드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정작 복지혜택이 절실한 대상에 대한 복지가 오히려 줄어드는 ‘보편적 복지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면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 재원으로 전환하기에 가장 좋은 지출항목은 교육환경개선비다. 교육환경개선비는 삭감해도 적어도 몇 년 동안 영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누적된 결손은 나타나게 되어 있고, 결손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 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응이 불가능해진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교육과 복지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좋고, 복지도 많이 주어질수록 좋은 것이다. 문제는 한정된 재원의 제약 속에서 어떻게 교육과 복지의 최적 조합을 찾아내느냐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의 영향으로 교육환경개선 예산이 적정수준의 4분의 1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시·도에 따라 약간의 시차는 있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2, 3년 내에 학교건물 노후화가 안전사고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급식비가 부족하면 수익자 부담 형태로 개인에게 부담시킬 수 있으나 교육환경개선비가 부족하면 개인에게 부담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 간접세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조세부담을 늘리면 역진적으로 저소득층 부담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무상급식 우선 정책에서 교육의 질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때가 되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교육학

학교 안전 소홀이 복지 탓인가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시설 안전 미비를 고발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후한 학교에 아이들이 다녀야 하는데, 국가도 재단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은 최근의 참사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문제는 학교안전에 대한 주의 환기가 엉뚱하게도 학교복지에 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일각에서는 2011년 무상급식 본격 실시 이후 학교안전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소홀하게 취급되었으니 무상급식·돌봄교실·누리과정 등 최근 확대된 학교복지를 도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생각해 보자. 학교복지 확대 이후 학교안전 예산이 줄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시 학교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 큰 틀에서 교육예산의 총량이 마치 고정된 것인 양, 교육안전과 교육복지 예산을 서로 상충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눈속임이다. 안전을 위해 복지를 희생시키자는 주장은 교육안전과 교육복지 모두 미약한 수준인 상태에서 허위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복지 때문에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이다. 아동·청소년 안전과 복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둘 다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돌봄·복지·안전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안전, 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돌봄, 식사, 교통, 교재 등에 부족함과 불평등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 학교안전의 근본적 재구축을 위한 예산은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을 축소해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전국 모든 유치원, 초·중·고교 모든 건물을 재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적어도 15조~20조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안전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4대강 사업예산과 비교하는 것이 규모로는 더 타당하다. 사안의 시급성이나 필요성을 봐서 학교시설 집중투자는 강바닥을 파는 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소위 국가개조론이 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면 안전과 복지예산의 획기적인 확대로 국가의 변화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 경제 규모로 볼 때 복지예산과 학교안전 예산을 모두 증가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돈이 없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 경제력 대비 한국의 안전과 교육복지 예산이 다른 국가들에 못 미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투입을 늘릴 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토록 큰 희생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우리 속의 성장우선주의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복지의 실패, 도처에 도사린 위험을 방치한 채 성장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제 삶의 보장, 즉 안전과 복지 없이는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하자.

 이런 이유에서 학교안전 예산을 빌미로 무상급식을 비롯한 복지예산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일부에서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 논쟁으로부터 촉발된 지난 지방선거 패배의 흔적을 덮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안전과 복지의 문제에 자신들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투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사회적 책임 회피를 반복하는 일이다.

 참사 이후,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의 일’이 국민의 삶을 중심으로 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복지국가는 국가와 국민의 존재 이유와 우선순위를 바꾸는 문제다. 학교안전 확보가 지금 막 도입된 복지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국민을 향한 국가의 자세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경찰력을 도심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복지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를 풀지 않았는가, 책임을 피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고, 정책과 예산의 변화로 대답하는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