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오심 잡는 비디오 설비 300억 … 한국식 판독이 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선동열 KIA 감독(왼쪽)이 지난 13일 NC전에서 필의 홈런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파울로 선언되자 김풍기 주심(왼쪽 둘째)에게 항의하고 있다. [창원=양광삼 기자]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 82조~246조원에 달한다고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했다. 갈등을 해소하는 유용한 방법이 스포츠다.

 거꾸로 스포츠가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최근 프로야구는 심판의 오심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 심판과 선수·감독이 대립하고 불신한다. 팬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젠 오심이 아닌 과학이 경기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우리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확대하자는 목소리다.

 최근 야구기사에는 선수가 아닌 심판이, 경기가 아닌 판정이 주어가 되는 경우가 꽤 많아졌다. 심판을 비난하는 게 스포츠처럼 돼 버렸다. 명백한 오심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내려진 판정을 두고 인신공격까지 하는 건 도가 지나쳤다.

 인간(심판)의 눈은 초당 10~12프레임으로 판별하지만 기계(슬로 모션)는 초당 300프레임까지 구분한다. 서너 개 각도에서 잡은 느린 화면을 돌려보며 “중계 화면을 보니 오심이었다”고 말하는 건 비겁하다. 인간의 한계를 과학으로 보완하는 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심판들까지 비디오 판독 확대를 환영하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불신과 갈등 해소비용이 만만치 않다. 올해 비디오 판독을 확대한 메이저리그는 300억원을 투자했다. 30개 구장에 10억원씩 쓴 셈이다. 메이저리그는 이미 각 구장에 자체 중계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구장당 10억원은 추가 비용이다.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 수준의 설비를 갖추려면 구장당 20억~30억원이 들 수도 있다. 내년 10구단 체제가 되면 프로야구는 비디오 판독에만 200억~300억원을 써야 할지 모른다. 여기에 시설 유지비와 인건비 등은 빠져 있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막대한 돈을 쓸 수 없고,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는 구단이 판정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난센스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비디오 판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모든 경기가 생중계되고, 12~13개 카메라가 그라운드 곳곳을 잡아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백만 야구팬에게 오심 장면이 퍼진다. 국내 심판의 기량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디지털을 이길 수 없다.

 비디오 판독을 확대한 올해 메이저리그의 두 달간 오심 번복률은 45.7%에 달한다. 번복이 잦았던 건 심판의 실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는 경기당 최소 2개의 방송사가 중계를 한다. 비디오 판독 요청이 오면 모든 자료가 뉴욕에 있는 ‘리플레이 운영센터’로 전송돼 37개 모니터를 통해 분석된다. 고비용의 대가로 신뢰를 얻었다.

 국내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급 시설을 운영할 비용과 능력이 아직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방송 카메라만 활용해 판독하자는 합의를 이끌어 내면 된다. 방송 카메라에 명확하게 잡힌 오심만 정정해도 프로야구 갈등은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수를 인정하고, 오심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프로야구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