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술집 신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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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보이·호텔」부근 A양주「코너」-. 밝은 거리 명동만큼이나 환하게 비치는 조명 한가운데 원탁모형의 「스탠드」가 놓여 있다. 자리에 앉으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확 튄 분위기.
하오 6시 본격적인 개강시간이 되면 미리 와 담배를 물고 자리에서 떠날 줄 모르는 여자손님들로 붐빈다. 낮에는 명동근처 술집에서 밤일하는 「호스티스」들도 「아르바이트」삼아 이곳에 많이 들른다.

<3년만에 40개소로>
「하루살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호기심에서 발을 들여놓은 「뉴·페이스」도 있지만,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이곳에 거의 매일 출근하는 「프로」급이 집집마다 하루 평균 20여명.
『술 한잔 같이 할까요』라는 말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이들에게 언제나 먹혀 들어가는 상투적인 인사말. 지배인 J씨에 따르면 인사말을 나누고 1시간도 못되어 젊은이들은『「고고·클럽」에 가자』고, 중년은 『좋은 데 가지』 『2차 갈까』라는 말을 건네면 대개의 이런 여자들은 그냥 받아들인다고 한다. 반대로 간혹 여자 쪽에서도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웨이터」를 통해 술잔을 건넨 뒤 짝을 지어 명동술집을 벗어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마치 양화점의 「쇼·윈도」에서 맘에 드는 구두를 고르듯이 상대를 찾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술집 종업원들은 말한다.
유능한 「바텐더」라면 좋은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 주업이지만, 이곳 세계에서는 이들을 잘 중개해 주는 것이 『유능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주인마저도 매력적인 「하루살이」에게는 술값을 받지 말고 이들이 유혹한 남자들로 하여금 매상을 올리도록 「바텐더」에게 당부하기도 한다.
이 같은 양주「코너」는 G라는 지하「바」가 개업한지 3년만에 「사보이·호텔」 주변에 40여 군데로 급격히 늘었다.
『홀가분하게 만나서 부담 없이 즐기자』는 명동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이 양주 「코너」가 안성맞춤이라는 것.
20여년 전 명동에 양풍이 불어 좁은 이 거리에도 3백여개의 양주 「스탠드·바」가 생겨 명동의 술집을 「바」로 대표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들끼리만 오기도>
「스탠드」에 앉아 술잔을 「바」에 맞닥뜨려 가면서 양주 맛을 즐기던 그 때와는 대조적으로 요즘의 「스탠드·바」는 다른 의미로 흥청거린다. 술맛보다는 상대를 찾기 위한 손님이 더 많아진 것이다.
「여자들의 거리」라는 명동. 양장점·양화점·미장원·양품점 등 골목마다 여자들이 넘쳐흐르는데 이제 술집에도 그 바람이 불었다.
대폿집에서조차도 여자들끼리 들어와 술을 마시는 것은 이제 혼히 볼 수 있는 풍경. 「유네스코」회관 뒤에 최근 경양식집을 차린 가정주부 K씨는 『이곳에서는 여자들이 오히려 돈을 더 잘 쓰지요. 많은 경우 남자와 함께 들어와도 돈을 내는 것은 여자 쪽이어서 명동이 여자들의 거리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문총이 명동에 있을 당시 문인들의 외상값을 출판사 사장들이 그어주던 때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다. 여자들이 남자 술값을 내주는 것까지 아주 예사롭게 돼버린 것이다.

<말초 자극하는 상혼>
여자손님이 늘어난 이유 때문에 명동술집에서는 여자종업원 대신 남자종업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코스모스·살롱」 종업원 L씨는 『이상하게 들릴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여자단골손님도 많이 있어요. 어떤 때는 말상대가 되어주기 위해 「데이트」신청을 받는 경우도 많지요』라면서 웃는다.
이처럼 변화된 명동술집의 분위기는 남녀간의 만남을 당연스럽게 만들었다.
명동을 자주 드나든다는 S대 3년 K군은 『서로 만나서 하루를 「엔조이」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젊은이들만의 전용물만은 아니다. 40, 50대의 지긋하게 나이든 사람들도 「젊어지자」는 핑계로 명동술집에 나타나 서성거린다.
얼큰한 술 기분에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호기는 명동거리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초적 계산과 눈치가 너무 약삭빠르게 명동을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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