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한미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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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미관계에 관한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의 연설은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란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한미관계를 「혈맹」으로만 믿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한미관계가 영원불변일 수는 없다는 말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동선 사건 등 몇몇 미묘한 문제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듣기에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문제를 일단 제쳐놓고 보면 거기에는 한미관계의 새로운 존재양식이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한국의 제1우방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후원자로서, 또 우리는 미국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안주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질서가 다원화하고 우리의 국력이 커짐에 따라 지금까지의 이러한 한미관계의 틀은 이미 타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주한미군 철수·박동선 사건·인권문제·무역관계 등 최근 한미간에 제기된 여러 문제는 그러한 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더 한층의 변화를 재촉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한미관계의 재조정은 어느 한나라의 필요에서가 아니라 두 나라 모두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한미관계의 새로운 재조정문제는 꽤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물론 몇 가지 우려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극단적인 사대주의와 배타주의에 치우치는 양극단이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말해 종전까지 우리의 대미인식은 사대주의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대미 인식의 무비판적인 관성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남아 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에는 이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이 일고도 있다.
이러한 두 극단적인 경향이 모두 소망스럽지 못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대미 연대만을 중시하다가 자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또 자주만을 강조한 나머지 대미연대를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새 시대의 대미관계를 보는 안목은 심정적인 관념론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론에 기초해야만 될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현실론이라고 하면 상호이해가 모든 관계설정의 기초가 된다는 뜻이다.
한미관계는 이해를 같이하는 면이 아직도 많다.
기본적으로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안보이익은 일치한다.
또 두 나라의 경제관계도 일방적인 의존에서 상호의존으로 발전해왔다. 다만 이렇게 두 나라의 경제관계가 양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마찰가능성의 확대를 수반하리란 것도 사실이다.
벌써부터 미국은 우리를 어느 면에선 잠재적인 경쟁자로서 견제하는 듯한 면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이러한 마찰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중·소의 3대 세력에 둘러 싸인데다 남북으로 가르기까지 한 우리에게 미국과의 연대가 여전히 불가결하다는 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이러한 연대를 해칠만한 요소는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제거 내지 축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 이해관계에 투철하자면 혈맹관계인데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의 논법은 이제 더 이상 원용되어서는 곤란하다. 오직 이해의 공통점을 최대한 개발·확대해 가는 자세가 요구될 뿐이다.
상호의존에 기초한 대등한 「파트너」란 새로운 한미간의 관계양식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이 과도기적 진통을 조속히 극복해내는 허심탄회한, 그리고 분명한 협력자세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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