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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법의 손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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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당은 지난 75년 여성 단체가 주동이 되어 국회에 제출한 민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부분적으로 채택할 움직임이다.
원래 가족제도란 일조일석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관습의 산물이다. 따라서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근간을 이루는 가족 제도의 개혁은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민법 개정안을 선택적으로 처리하려는 여당 측의 발상은 좋으나, 정기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육법의 하나인 민법 개정안 처리를 조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선택적인 처리를 하더라도 좀더 중지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여당의 계획으로는 논란이 많은 호주 제도와 동성동본의 금혼은 현행대로 둔 채 재산 상속의 남녀 격차를 완화하는 등 부분적인 손질만을 하겠다는 것 같다.
다만 동성동본 금혼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의 자녀에 대해서만은 특례 규정으로 구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은 20년전 민법 제정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란의 초점은 금혼의 범위가 너무 광범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금혼의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대체로 두 가지 논거를 든다. 우선 이 제도가 우리의 고유관습이 아니라 지금은 중국에서마저 폐지된 중국 대명률의 무비판적 수용이었다는 주체적 관점이다. 또 하나는 실제 문제로 동성동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27만명과 당사 부부를 합치면 전 인구의 1%가 훨씬 넘는다는 현실은 동성동본 금혼이 제도로서의 존재 의의를 잃은 증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 대해 현행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는 측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친족 관념·성 윤리·우생학적 근거를 내세운다.
우리의 전통적 관습과 친족 관념을 근저에서부터 파괴할 뿐 아니라, 비교적 허물없는 접촉을 해온 친족간에 금기 의식을 약화시켜 성도덕 문란을 조장할 염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 때문인지 이 문제에 대한 여당 측의 처방은 구차스러울 정도다.
동성동본 혼인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녀만을 구제한다면 결국 혼외 자녀로서 입적시킨다는 말인데, 그것은 구제라고 할 것도 없다.
그보다는 현행법이 동성동본간의 혼인을 8촌 이내의 혈족간 금혼과 구별해 취소혼으로 규정한 것을 활용하는게 오히려 나을는지 모른다. 취소권자들이 일정 기간 안에 취소를 않거나, 자녀가 태어나 취소가 불가능하게된 사실혼을 기정 사실로 법이 포섭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또 재산 상속의 경우 남녀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도 헌법의 원칙에 문리상으로는 적합할지 모르나, 사회 경제적 여건과 의식의 변화라는 좀처럼 극복하기에 시간이 걸리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상속인간의 균분을 원칙으로 한다하더라도 호주 상속자와 부모를 모신 자녀에 일정률을 더 하고, 출가녀에게 일정률을 감하는 정도는 불가피하지 않겠는가.
아마 지금 같이 핵가족화 해 가는 사회에선 재산 상속에 관한 조항을 고쳐야 한다면 오히려 급한 건 맏이건 막내건 부모를 모시는 자녀에게 특별한 우대를 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가족 제도란 여당 측의 수정 내용 중 몇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좀더 심사 숙고해야할 점이 무수히 나타날 정도로 복잡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 제도를 조급하게 다룰 필요는 결코 없다.
더 시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 의사의 최대공약수가 반영되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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