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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해체 이후, 폴 매카트니 50여 년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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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국 리버풀의 동네 친구에서 전설의 가수가 된 비틀스. 왼쪽부터 링고 스타(74), 존 레넌(1940~80),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1943~2001).

비틀스가 해체했을 때 폴 매카트니는 고작 28세였다. 20대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명성을 쌓은 청년 앞엔 ‘남은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표가 찍혔을 터다. 음악을 계속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후 40여 년은 자신이 가장 화려하고 총명했던 20대를 뛰어넘으려는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비틀스란 불멸의 밴드와의 고독한 경쟁이었다.

◆폴의 새 날개, 가족

 비틀스 해산은 곧 음악적 동지이자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 일이었다. 빈자리를 채운 건 아내 린다 매카트니(1941~98). 미국 뉴욕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린다는 사진 작가로 일하다 폴을 만났다.

폴은 윙스(Wings)란 밴드를 만들고 린다에게 키보드와 하모니 보컬을 맡긴다. 초창기 팬들은 부부의 화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화음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의 뛰어난 작곡 능력에 트럭을 타고 전국 투어를 하며 실력을 쌓는 성실함까지 보태지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한다. 걸작으로 꼽히는 ‘Band on the run’(1973) 등 6장의 앨범은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의 10위 안에 들었다. 비틀스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건 린다와 네 자녀의 덕이 컸다. 가족은 그에게 안식처이자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비틀스와의 화해

 1980년 폴은 윙스의 사실상 해체를 알리며 솔로앨범 ‘McCartney II’를 발표한다. 이 시기 그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는다. 80년대는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다음 세대의 스타가 쏟아져 나온 격변기였기 때문이다. 로큰롤이 아닌 새로운 장르가 주류로 편입되고 음악적 기술도 날로 발전했다. 폴의 어떤 앨범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Press to play’(86)의 경우 실패를 맛봤다. 일본으로 월드 투어를 나섰다가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악재도 있었다. 존의 죽음에 대한 미지근한 반응도 비난의 화살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의 돌파구는 비틀스였다. 『더 비틀스 솔로』(시그마북스)의 저자인 기자 맷 스노는 “70년대만 해도 폴은 비틀스에 대해 추억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대화 주제로 나오는 것도 꺼렸지만 이제는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비틀스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썼다. 70년대엔 일절 부르지 않던 비틀스의 명곡을 공연 레퍼토리의 절반 이상으로 채웠고 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하는 등 비틀스의 유산을 잇기 시작한다. 최근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신곡만으로 공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공연에서 ‘Hey jude’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한 바 있다.
 
◆전설의 반열에 오르는 법

90년대 이후 그는 클래식 앨범을 발표하며 확장형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작곡가 칼 데이비스와 함께 ‘Paul McCartney’s Liverpool Oratorio’(91)를 발표하는 등 총 5장의 클래식 앨범을 냈다. 팝 앨범 역시 상업성과 작품성을 고루 인정받는다. 2011년 세 번째 아내 낸시 시벨을 위한 세레나데 ’My Valentine’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앨범 ‘Kisses on the bottom’은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을 수상한다. 젊은 뮤지션과의 공동 작업도 적극적이었는데 지난해 발표한 ‘New’가 결정판이었다. 상복도 이어졌다. 97년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99년엔 솔로 아티스트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10년엔 최고의 대중음악인에게 주는 거슈윈상을 받는다. 그의 생에서 음악이 부재하던 순간은 없었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존과 조지가 죽고 링고가 소소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사이 비틀스를 창조적으로 계승한 것도 폴이었다. 우리는 전 세계 대중가요사의 가장 결정적 장면을 그를 통해 현재 진행형으로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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