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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6)-바둑에 살다(5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0년대초 바둑인구는 날로 증가하여 1백만명에 육박한다는 때였다.「팬」들의 궁금증은 우리기사들의 단위가 일본에 비교하여 떨어질 것이라는 중론이었다.
이와같은 추상적 평가는 망연한 면도 있었다. 그것은 바둑하면 일본이 총본산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고, 또 사실 일본기사는 그 전동과 역사가 우리보다 3백50년이나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한일간의 단위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아마추어」의 단급에 있어서는 우리쪽이 석점(3급)정도 강했다 (현재는거의 비숫하지만). 즉 우리5급이 일본사람과 대국할 때는 2급행세를 해야 균형이 잡혔던것이다.
따라서 우리의「아마추어」초단은 일본에 가서 싸울때는「아마추어」4단으로 행세해야 치삭가 맞는다는 계산이 된다. 이와같이 우리의 단과 급삭는 시세말로 대단히 짠 편이다.
일반이 이런줄은 모르고 일본은 바둑이 강하다 하여 오히려 반대로 5급 짜리가 7∼8급행 세를 했으니 치삭가 맞을리 없다. 그래서 이런 착각을 한 사람이 일본에 가서 바둑을 두면
으레 『저 한국사람은 기료를 안내려고 급수를 속이는 것 같다』는 오해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국의 「아마추어」급수는 매우 높다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아마추어」와는 달리 「프로」의 단위는 어떤가. 62년도의 나의 단수는 7단으로서 최고단자였고, 그외 5단이 1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4단이하 였으니 화제의 대장은 자연히 나의 7단과 일본의「프로」7단과의 실력비교에 초점이 주어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우선 이문제를 풀어드리는 것이 또한 의무로 느껴져 그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고 장기영의원의 협조로 일본기사와의 대국이 실현되었다.
62년8월2일「기따니」(목곡) 문하 백단돌마 기념대회에 참석차 치동군을 데리고 도일한 기회에 일본의 최고「타이를」이었던 「명인」과「본인방」두 사람과 대국할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다같이 해방전에 나와 일본기원에서 친했던 분들이었는데 해방과 더불어 나라가 달라진 탓인지 처음에는 대국에 좀처럼 응해주지않을 기미였다.
처음에「사까다」(판전영남) 본인방과의 대국을 교섭해 보았으나 난항이었다. 그래서 「후지사와」(등택수행)명인과 교섭해 보았더니 오히려 이쪽이 수월했다. 당시 초대명인이었던 「후지사와」는 명인전 주최측인「요미우리」(독보) 신문사의 사전승인 없이는 타국의 대국을 못하도록 제한 받던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쾌낙해 주었다. 그러나 소정의 대국료와 일본기원에 주관료등을 납입해야 했다.
이래서 9월12일 일본기원에서「후지사와」명인과 선번이란 치삭로 대국했다. 입회인은「이시모」(석모가구부) 7단이었고, 독설가로 유명한「야스나가」(안영일)「아마추어」7단도 장시간 관전했으며, 또 때마침 그날은 기사들의 대국날짜여서 9단만도 5∼6명이 몰려와 관전하는 바람에 약간기가 질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행히도 넉집을 이긴것은 천행이었다. 근20년만에 처음으로 일본기사와 대국해본 소감은 착잡했다.
그동안「후지사와」명인은 오직 기도연마에만 전력했고, 나는 보급에 주로 전력했으니 적수가 안되리라고 짐작했었는데 의외로 호국이었다. 이겼다는 기쁨에 앞서내가 20년동안 바둑보급을 올바르게 했구나 싶었고, 동시에 바둑수란 것은 이래서 심오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던 것이다. 내가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사까다」 본인방은 『조선생, 굉장한데.그렇다면 나도 한판 두어 보겠다』고 오히려 도전을 받다시피되어 9월18일 일본기원에서 김인8단이 관전하는 가운데 두어졌다. 도일한지 20일이나 되어 여독이 심했고, 또 당일은 날씨조차 흐려 지병인 신경통마저 발작하여 최악의 「컨디션」이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패자의 핑계에 불과하지만, 박살을 낼수있는 고비에서 안일무사주의로 호론 완착때문에 지고 말았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당당한 솜씨였다는 논평이었다.
어쨌거나 이 두판의 대국으로 우리의 7단이 일본「프로」기사의 단위에 손색이 없다는것이 증명되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귀국해보니 아는 분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많이 받았다. 이것은「팬」들이 궁금해 한바를 풀어드릴수 있었다는 표시인것같아 흐뭇하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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