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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어 가는 중 노년 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후 30여 년간의 생활사를 통해 우리는 개인과 어린이 및 청소년, 그리고 여성의 해방이라는 근대적 사회·문화 혁명을 이룩하는데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는 수직적인 양상에서 점차 수평적인 양상으로 바뀌어졌으며 가정과 사회에서의 젊은이의 비중과 여성의 지위 또한 현저하게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가정생활의 중심도 대가족제하의 가부장이나 시부모가 아니라 「핵가족」으로 분할된 젊은 부부인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공사회의 주요 전문직과 기능직도 50대 이상보다는 30대·40대의 청장년들이 대거 점유하는 사태가 일반화되었으며 전문직 여성인구 역시 착실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대중문화·소비문화·「레저」문화 역시 과거와는 달리 주로 아동·청년·여성수요자들을 상대로 확대·개발돼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발전」임에는 틀림없고 또 어떻게 보면 거의 막을 수 없는 추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것이 무조건 발전이며, 발전이라는 것이 무조건 다 좋은 것뿐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약간의 회의와 반성이 없을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청년과 여성지위의 상대적인 향상에 역 비례해서 한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노인의 지위와 권리가 형편없이 하락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와 반성을 금할 수 없는 형편이다.
오늘의 세태와 사회상에 비추어 이제 정작 해방되어야할 약자는 청년이나 신여성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밀리고 소외당한 할아버지·할머니 시부모들이라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청년, 모든 신여성, 모든 현대식 남편들이 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우 그들의 청년문화, 그들의 「여성해방」, 그들의 핵가족, 그들의 이기주의는 오늘의 노인을 더욱 더 고독하고 무력하고 무용한 존재로 떼밀어내고 있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키는 어려울 것이다.
할아버지·할머니 시부모들은 이미 섬기기 어려운 존재도, 가정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존재도 아니요, 그렇다고 더불어 의논하고, 더불어「바캉스」가고, 함께 결정하는 불가결한 상대역도 아니다. 하려야 할 일이 별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가려야 갈곳이 별로 있는 것도 아니다. 들려주고 심은 일, 가르쳐주고 싶은 것쯤은 대중매체나 젊은 「피어·그룹」(동료집단)이 대신 해주고, 갈만한 곳, 할만한 일자리는 모두 젊은이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소외상태에서 오늘의 노년들은 자기 삶을 사는 보람 속에서보다는 젊은 세대의 삶에 얹혀 사는「잉여인간」으로서의 우수에 잠겨 산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노인은 바로 청년세대의 어버이들이요, 청년들이나 젊은 부부도 언젠가는 다 노인이 될 사람들이다. 이제 자녀로서의 주장이나 며느리로서의 「해방」이나 신식남편으로서의 의무는 그런 대로 얼마만큼은 자리가 잡혀가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앞으로는 노년세대의 조락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현대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만 할 차례라 생각된다.
현대적 여건 하에서 가정적·사회적 소외자가 되어버린 노년세대의 복지와 보람을 위해 무엇이든 가능한 생활주제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 가정은 가정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각각 독특한 방법과 수단을 강구해 낼 수는 없을 것인가. 노년세대 역시 그들 나름으로 소극적인 체념자세를 불식하고 각방면에서의 여론형성집단으로 등장하여 보다 적극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강화해 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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