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조인간 등장전야"…찬반논쟁 한창|부엌에까지 파고든 미국의 「컴퓨터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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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컴퓨터」가 인간같이 사고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인조인간을 제작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논쟁은 마침내 「그리스」철학 이래의 존재론적·윤리학적 논쟁의 차원에까지 발전되고 있으나 실제로 인조인간이 등장할 때까지 결론은 미지수-.
지난4월 「뉴욕」에서 개봉된 영화 『악마의 씨』는 마침 미국의 「컴퓨터」학자들간에 이같은 찬반논쟁이 불을 뿜고있을 때라 논쟁을 더욱 소용돌이로 몰았다.

<경종 울린 『악마의 씨』>
「컴퓨터」과학자「앨릭스·해리스」가 인조인간「프로튜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으로 변환 자재한 몸과 예언력을 가졌음)를 만들어내고 그로 하여금 백혈병치료법을 발견토록 했으나 이 「프로튜스」는 주인의 명령을 묵살하고 제멋대로 행동할 뿐 아니라 마침내는 주인의 아내를 범하고 자기의 자식을 전수할 아이를 임신시킨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
결국 『악마의 씨』같은 영화나 「인조인간 논쟁은 오늘날 미국사회에 미친 「컴퓨터」보급의 「혁명적」여파를 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컴퓨터」는 미국전역에 보급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 때 「카터」는 항상 전세기 뒷자리에 「뉴욕·타임스」정보은행과 연결된 「컴퓨터」를 싣고 다녔다. 「터미널」의「키」를 누르면 「스크린」위에 원하는 최신정보가 즉각 나타나는 장치다.
이것은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이룩한 소위 『「컴퓨터」혁명』의 결과다. 현재 이 나라GNP의 절반, 노동력의 45%, 노동임금의 53%가 정보제품의 생산·처리·분배와 관련돼 있다.


1958년의 정보산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9%, 종사인원이 31%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비약이며 그 주축은 물론 「컴퓨터」.
「컴퓨터」의 소형화와 대중화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76년 현재 미국엔 3백개의「컴퓨터」판매점이 있고 IBM사 하나만의 연 매상고가 무려 2백억「달러」였다.
「포드」사·GM사는 자동차에 「컴퓨터」를 설치, 「가스」를 절약하고 사고를 줄인다. 학생들은「샌드위치」를 먹으러 갈 때 장난 삼아 「컴퓨터」에 자문을 구한다. 앞으로 5년 후면 미국가정의 부엌에도 「컴퓨터」라는 하인이 등장할 예정.
아침에 눈을 뜨면 주부는 침대에 누워서 「컴퓨터」장치가 든「토스트」기계·「코피·포트」·「프라이·팬」에 식사지시를 해두고 15분 후에 식탁으로 옮겨서 식사를 하기만 하면 된다.
「시카고」의 「시어스·로벅」백화점에서는 벌써 인조인간 보조판매원이 등장하여 어린이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1년에 2천4백「달러」의 사용료를 내고 「일리노이」대학의 「컴퓨터」와 연결된 「터미널」을 집에 설치하기만 하면 앉아서 화학·물리·외국어를 비롯한 1백50가지의 강의를 원하는 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
여기 가입된 「터미널」은 현재 10만을 넘고 외국에는 인공위성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메리카」은행 본사에서도 「컴퓨터」혁명의 파장을 실감할 수 있다. 자산 7백80억「달러」의 이 은행은 완전히 전산화되어 있다.

<종이로부터의 해방>
하루 처리하는 수표가 5백만장, 액수로는 백억「달러」다. 4천6백만명의 고객이 사용한 외상「카드」의 기록과 수표를 「컴퓨터」가 처리해 낸다.
모든 거래기록은 「디스크」에 담아서 보관하는데 「디스크」한 장에 2백만의 글자가 기록된다. 「아메리카」은행을 한바퀴 돌아도 돈이라고는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컴퓨터」혁명은 종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상을 준다.
종이의 발명이 인류문명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이한 현상 같기도 하다.
『악마의 씨』의 주제가 상징하듯이 「컴퓨터」혁명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학자들은 「컴퓨터」가 창조적인 사고를 아직은 할 수 없는 사태를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개인과 조직, 정부와 민간단체,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정보의 분배문제에 관한 현실적인 논란은 벌써 활발하다.
미국경제와 미국생활은 나중에 닥칠 「컴퓨터」의 해독을 짐작은 하면서도 「컴퓨터」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꾸어 가고 있다.
그것이 미래의 비극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것이 미국의 국력이고, 「컴퓨터」수출·정보의 수출은 미국의「문화제국주의」라는 모습을 띠기 시작하고 있다. <글 김영희 특파원, 사진 김택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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