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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60년 사의 평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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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17년11월의 「러시아」 혁명은 올해로써 만 60주년을 맞이한다. 그 동안 소련 사회는 여러가지로 괄목할만한 변화를 겪어 왔고, 공산주의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권력으로 현존하게 되었다.
이 변화의 양상을 소련 혁명 60년이란 시한 속에서 바라볼 경우, 그것은 한마디로 「혁명이상의 상실 과정」이란 말로 표현해도 좋을 듯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오류의 역사라고 평해도 좋을 듯하다.
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마르크스」가 예언한대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숙한 서「유럽」에서가 아니라 가장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우선 「마르크」주의의 오류를 입증한 것이다.
이 최초의 오류는 그후 「레닌」과 「스탈린」의 「볼셰비즘」과 전략 전술 및 국가 이론·공업화 이론에 의해 더욱더 누진적으로 중복·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혁명의 조건인 자본주의 성숙도, 선진적 노동자 계급도,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도 존재하지 않는 「러시아」에서 「인공적으로」 혁명을 만들어 내자니 자연 그런 무리가 가해졌던 것이다.
「레닌」은 우선 혁명의 주도권을 「시민」이 아니라 소수의 전문적 음모 집단인 직업 혁명가에 집중시킴으로써 당의 독재라는 일종의 비혁명적인 영구 독재를 제도화해 놓았다. 그후 「스탈린」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소련이라는 일국의 공업화와 강병책에 일치시킴으로써 혁명의 일반적인 도덕적 명분이라 할 인간적·인도적 「모티브」를 철저히 소외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흐루시초프」 시대의 짧은 「해빙기」가 있었다곤 하지만, 「브레즈네프」 시대에 들어온 오늘에 있어서도 소련 사회의 「스탈린」주의적 억압성과 관료성·국가 「쇼비니즘」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소련 사회는 「솔제니친」의 주장대로 절대 다수의 주민들이 왜·무엇 때문에·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지도, 결정하지도 못하는 소외 속에서 그저 소수의 당 간부들이 시키는 대로 60년간 무조건 노동하고, 덜 먹고, 덜 즐기고, 줄서기를 하는 거대한 「수용소 군도」로화하고 말았다. 비록 혁명 60년만에 「츠아」시대의 기아 농노들이 빵과 집단 농업 노동자로서의 새 신분을 얻었다고 자찬되기는 하지만, 이렇듯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정권이 배제된 곳에 참다운 인민 해방과 복지에의 진전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억압상은 오늘날 「사하로프」로 대변되는 이견소지자 (dissenter)들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요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리투아니아」·「라트비아」·「루마니아」·「유고」·「폴란드」 등에서의 반소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러-코뮤니즘」현상과, 사회주의 경제에의 이윤 동기의 도입 추세도 그 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몇몇 움직임들이 과연 소련 공산주의의 장기적인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들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소련 공산주의 내지 「마르크스」주의의 도식성은 안팎으로부터 서서히 변질·탈색에의 요구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은 유물사관이니, 「프롤레타리아」의 절대적 궁핍화니, 또는 자본주의 쇠퇴 필연론이니 하는 도식의 허구성이 현실적으로 입증되고, 인문이란 존재가 단지 관청이 나누어주는 빵 배급만으로 천국이 왔다고 만족해하는 식물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로써도 대충 예기해 볼 수 있는 전망이라 하겠다.
결국 소련 주민의 복지 요구와 지식인의 염원, 그리고 동구 및 각 연방의 민족주의 여망이 조금이라도 관철되기 위해선 소련의 「이데올로기」·권력·경제 정책이 최소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쪽으로라도 진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크렘린」 권력 자체의 기본 전제에 관련되는 문제인만큼 그 조속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달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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