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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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 경제의 불황 추세가 차차 도출되고 있는 가운데 이게 외환시장이 본격적으로 교란되고 있어 세계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14일의 세계 주요 외환시장에서는 일제히「달러」가격의 폭락현상이 그 극에 이른 감을 주고 있는 것이며, 이런 혼란이 어떤 결과를 파생할 것인지 극히 우려된다.
일본의「엔」하 시세는「달러」당 2백로「엔」20「센」으로 까지 상승함으로써 전후 최고 기록을 보이고 있으며「스위스·프랑」·「프랑스·프랑」·서독「마르크」등도 전후 최고 기록을 보일 정도로 시세가 오르고 있다.
이러한「달러」시세의 폭락 현상에 대해서 서구는 물론 일본에서도 미국의 고의적인 외환전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하고자 각각 중앙은행의「달러」매입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외환전쟁은 그 동안 온 세계가 희망하던 국제협조를 통한 공동의 번영이라는 이념이 국가 이익 앞에 얼마나 무력한 명제인가를 구체적으로 실증하는 좋은 예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합의 논리가 더욱 노골화 할 것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제 외환시장의 혼란은 선진공업국간의 싸움이 실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이번「달러」파동은 미·일·서독을 주축으로 하여 세계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명제의 구체적인 붕괴 현상으로서 이해해야 하겠다.
그 동안 미국은 저리 정책 등 경기 회복 책을 집행했으나 서독과 일본은 이에 호응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국제 수지적자만 늘어가는 대신 일본과 서독은 계속 큰 흑자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보조불일치는 시일이 지남에 따라서 미국의 국제수지에 커다란 압박 요인을 형성하고 있어 미국은 그 동안 수입규제를 강화시켜 왔었다.
그러나 수입규제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달러」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수출입 양면에서 서구 제국과 일본의 국제수지를 조정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은 국제통화로서의「달러」의 역할이 강력한 이상, 미국 측의 공식적인 정책에 대해서 일본이나 서구 자국은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능동적인 대항이 아니라 수동적인 방어인 이상 결과적으로「엔」대나「마르크」가 어느 선까지 절상되어 안정될 것이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본과 서독의 평가 절상 책이 높으면 높을수록 일본과 서독 경제는 침체과정을 깊게 겪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외환 파동은 국제경제의 하강 국면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일·서독의 협조를 통한 확대 균형이라는 명제 대신에「엔」대와「마르크」대의 평가절상을 통한 축소균형의 길을 현실은 선택하는 결과가 된다.
이번 외환시장 교란의 여파가 축소 균형적인 것이라면 개도국 등 제3세계의 경제는 더욱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달러」파동이 내포한 축소 균형적인 동인은 수출「드라이브」를 주축으로 하는 우리의 정책 기조에도 하나의 중대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선진 제국은 이성적으로 사태를 수습해서 협조를 동한 확대균형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겠으나, 대외 의존도가 남달리 높은 우리로서는 세계 경제의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전제하에 기본 정책을 시급히 재점검함으로써 불 측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깊이 배려해야 할 것이다.
해외부문의 호조 속에서도 실물경기가 식어 가고 있는 지금의 동향으로 보아 해외부문의 성장 지탱 역이 급속히 식어 갈 때 국내경제는 깊은 모순에 빠질 공산이 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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