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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불수 위자료 1000만원 … 너무 인색한 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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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의사의 오진으로 맹장수술 시기를 놓쳐 반신불수가 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애지중지 기르던 치와와가 진돗개에 물려 죽었다면 주인의 슬픔은 어떤가. 사람의 감정과 충격을 돈으로 계량해 보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사망 위자료도 8000만원이 최고액

 울산지법은 올 2월 맹장염 환자 사건에서 병원 측이 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미 환자 측이 쓴 병원비 3800만원과 환자 본인(900만원), 남편과 두 자녀(각각 100만원씩)의 위자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치와와 주인 역시 같은 달 대구지법으로부터 구입비용 200만원 외에 100만원의 정신적 위자료 판결을 받아냈다.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를 수발해야 하는 자녀의 고통과 기르던 강아지를 잃은 슬픔이 금액으로는 같다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손해배상액 산정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종종 듣는다. 특히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인정받기도 어렵고, 인정되더라도 ‘쥐꼬리’ 수준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에게 30만원, 층간소음으로 노이로제에 걸린 아랫집 주민은 300만원을 받는 식이다. 실무적으로 법원은 배상 대상을 ▶적극적 손해(치료비나 구입비 등 실제 지출한 비용) ▶소극적 손해(일을 못해 날아간 수입) ▶정신적 손해로 나눈다. 적극·소극적 손해는 비교적 간단하다. 지출 영수증이 있고, 일실수입(일을 못해 잃은 수입) 계산 공식도 정해져 있다. 문제는 생명·신체·자유·명예·신용 등을 침해당해 생기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위자료)이다.

 위자료는 가해자에 대한 일종의 징벌로 본다. 부인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던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이 민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330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반면 우리 법원은 위자료도 철저하게 손해에 대한 보전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손해 정도가 얼마인지 가늠할 잣대가 불분명하다.

개인정보 유출 30만원, 층간소음 300만원

 1959년 판례에 따르면 위자료 금액을 법관의 순수한 자유재량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 정도, 연령, 성별, 직업, 재산, 교육 정도, 과실유무 및 가해자의 고의나 과실 정도, 직업, 재산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한을 뒀다. 사실상 튀지 않게 알아서 결정하라는 얘기다.

 결국 법원에서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알게 모르게 눈치보기가 진행됐다. 91년 서울중앙지법(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이 정한 위자료 산정기준이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사망 사고 시 위자료 한도를 2000만원으로 하고, 노동능력 상실률과 피해자 과실을 고려해 감액하는 방식이다. 몇 차례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수정을 거쳐 지금은 한도가 8000만원이 됐다. 23년 동안 네 배가 된 셈이다. 처음엔 교통·산재 사건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민사재판부가 이 기준을 참고한다. 예컨대 불륜으로 가정을 파탄 낸 배우자에게 물리는 위자료가 2000만원 안팎인 것도 이 기준에서 유래됐다.

미국선 징벌 수준 … OJ심슨 330억 배상

 판사들도 고충은 있다. 심정적으로는 거액의 위자료 판결로 불법행위를 혼내주거나, 불쌍한 피해자를 위로하고 싶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는 물론이고 상급심 재판부도 설득할 수 없다면 상급법원에서 깨져 파기환송되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법원에선 가급적 금액을 낮추고, 기준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연초 발생한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 재판이 한창이다. 얼마 전 발생한 서울시 지하철 추돌사고 피해자들의 소송도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손해배상이 아니면 위자료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법원의 관행은 정신적 피해 보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최현철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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