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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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2월「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긴급신체검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혈액조사반은 7층 이상에서 근무하는 60여명의 외교관·통신기술자·비서·해병경비대원들로부터 이상한 증상을 발견했다. 이들은 7층 이하의 직원들에 비해 방사선반응이 훨씬 민감하게 나타났다. 그 무렵 「월터· 스테슬」미 대사는 보좌관들에게 신체위험을 경고하고, 미국 대사관건물의 안전관리를 위해 특별 보수를 명령했었다.
미국은 세계에 주재하는 모든 미국대사관 건물에 특수 안전장치를 하는 것이 상례다. 중요한 사무실과 통신실은 네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을 온통 납(연)의 후판으로 감싸고있다. 유리창도 어떤 경우는 이중으로 장치하고 그 사이에 진공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그 유리의 표면은 납으로「코팅」한다.
서울의 미국대사관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연의 후판으로 중요사무실들을 밀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도청을 막기 위한 장치들이다. 특히 연판은 도청뿐 아니라 방사선에 의한 피해도 막아준다. 「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신체검사를 받은 것은 「스테슬」대사 자신이 「원인미상의 혈액병」에 걸렸다는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필경 대사관의 바른편에 있는 건물에는 소련첩보기관에 의해 특수「레이다」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초단파를 발사, 그 전파에 의해 도청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대화를 할때 생기는 공기의 진동은 그 주위의 「에어컨」혹은 전등「소키트」나 벽속의 철근 등을 진동시킨다. 여기에 초단파를 발사하면 그 진동에 따라 변조된 반사신호가 나온다. 그것을 전자로 조작하면 육성이 그대로 재생된다는 것이다.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지는 그 무렵『미국의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미국에 책임을 전가했었다. 『미국대사관 옥상엔 「안테나」가 너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높은 전자자장이 스스로 발생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신문은 미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그 안전기준을 조사한 일이 있었던 사실도 밝혔다.
전파 문명속에서 미소의 보이지 않는 전파전쟁은 소설 속의 「미스터리」를 연상하게 한다. 바로 그 현장인「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8, 9, 10층에서 지난 26일 밤 화재가 발생했다. 소련 소방대는 미국측의 요구로 바깥에서만 소화작업을 했다. 여기서도 기묘한 미소의 「첩보전쟁」을 엿볼 수 있다.
화재원인은 아직도 미상. 아뭏든 현대의 문명·정치의 「델리커시」가 빚은 희극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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