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만에 모양만 바뀐 한은법·은행법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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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11월의 이른바 한은법 파동이후 꼭 10개월만에 다시 손질한 한은법·은행법개정안이 마련되었다. 지난번의 그것이 중앙은행과 통화당국의 「힘의 배분」을 주로 다룬 데 비해 이번 개정안은 상당히 「실무적」으로 접근한 점이 두드러진다.
『공연히 큰 줄기까지 바로 잡으려다 정작 시급한 실무적 보완조차 늦어져』 부득이 차선의 개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고백(?)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한은법에 대한 재무부의 못마땅한 생각은 매우 뿌리깊은 것이어서 언젠가는 다시 재론할 때가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일반의 중앙은행 「알레르기」현상에 대해 「브룸필드」의 망령으로 개탄해마지 않았던 재무부관리들은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행여 「알레르기」가 재현될까봐 매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러나 지난번 파동의 핵심이던 금통운위에 대한 언급은 없어진 대신 이번에는 은행법34조를 고쳐 은행업무에 대한 은행감독원의 권한을 크게 강화, 지난번 파동 때 못 이룬 「소신」의 일단을 다시 펴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감독원기능은 금통운위 의결사항에 대한 검사기능이 위주였으며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적립금보유나 손실처리에 관한 제한된 권한밖에 없었다.
이를 고쳐 은행경영이나 여신운용전반에 관해 감독원장이 지시·감독권을 가지게 한다면 금통운위 고위권한의 명백한 침해가 될 뿐 아니라 재무부의 입김을 더욱 강력하게 행사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결국 재무부는 뜻밖에도 광범한 일반의 중앙은행과민증을 무마하기 위해 명분에서는 크게 후퇴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정책개입여지의 확대라는 실리는 그대로 온존시켜 보자는 전략을 채택한 셈이다.
이 같은 전략의 변경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떤 실효를 나타낼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다만 금융의 중앙집권에 대한 재무부의 집념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는 이번 개정안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번 은행관계법개정의 또 다른 줄기는 금융기관 유동성에 대한 통제수단을 크게 강화한 점이다. 통화안정증권의 발행한도를 철폐하고 법적 뒷받침이 없었던 안정계정운용을 한은법에 명문화한 것은 하반기 이후의 대폭적인 금융긴축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곧 국제수지개선에 따른 통화증발을 달리 대처할 묘방이 없음을 뜻하며 한계지준제의 도입과 함께 금융기관 유동성이 크게 제약받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위한 자본금증자나 지급보증한도의 확대는 경제규모 확대에 따른 불가피한 과제이지만 대형화에 비례하는 만큼 부실화요인도 증대되는 점에 비추어 실질운용은 배전의 신중이 요청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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