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학 70년과 「8·15」…그 맥락|문인 6인에게 듣는 우리문학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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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학은 역사의 흐름을 대변하며 역사의 흐름은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8·15해방과 같은 역사적 변혁은 한국문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문학에 있어서 8·15는 무엇이며 8·15를 계기로 한국문학은 어떤 면모로 새 출발하여 지금에 이르렀는가. 8·15 32주년을 맞아 「해방과 문학」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각 세대의 문학인들로부터 들어본다.

<설문>
①신문학 70년사에 있어서의 8·15의 의미.
②해방이후 한국문학의 두드러진 특징.
③8·15는 분단의 시발이라는 의미에서 한국문학작품의 「스케일」(소재 및 무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④해방전의 대표작·해방후의 대표작-그 평가.

<백철 문학평론가>다른 예술분야보다 세계적인 깊이에 미달
①어느 문학이든지 그 민족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제 36년간의 우리문학은 암흑기였으며 8·15는 독자성을 가진 새로운 한국문학을 출발케 한 계기가 되었다.
②해방직후 활기를 띠었던 문학활동은 50년대에는 일시 중단되는 양상을 보였고 50년대 후반부터야 본 궤도에 접어들었다.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매우 높은 차원을 보여 주었으나 인생관·세계관에 있어서는 빈곤성을 나타냈다.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문학분야가 아직 국내수준에서 맴돌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③「이데올로기」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분단이라는 상황이 작품의 「스케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④공로 면에서 따지면 해방전후를 통틀어 춘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해방전과 후를 잇는 문학활동으로서 김동리·서정주의 위치가 확고하며 해방 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는 서사문학의 「패턴」을 확립한 안수길의 『북간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한 최인훈의 『광장』을 꼽고 싶다.

<서정주 시인>쓸 수 있는 자유 있는 한 「분단」은 문제 안돼
①일제 때도 한국문학의 독자적인 특징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어려웠고 8·15는 자연발생적으로 한국문학의 흐름의 방향을 새로 정립케 했다. 그것은 곧 민족문학의 새로운 전통이다.
②수많은 문인이 작고했고 많은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가 문학사적 존재는 아니다.
다만 한국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한국인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슬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몇몇 거봉들은 확실히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대표하고 있다고 본다. 일제하의 재능이 해방 후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③문학인에 있어서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쓰는 자유가 허용된 상황 속에서 분단이라는 것이 큰 제약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유·본능·평화·인권을 위한 끈질긴 집념을 보인다면 「스케일」은 스스로 뒤따르는 것이 아닌가.
④시에서 본다면 해방 전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김영랑·윤동주의 작품들이 시에서 중요한 언어의 매력과 민족정신을 최대한 내 보인 작품들이다. 해방 후에는 박재삼·고은·김남조의 작품에서 우리민족 고유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강신재 소설가>진정한 민족문학은 해방과 함께 자리잡아
①일제하에서도 문학이 있었다지만 그것을 본격적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은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우리문학의 내용이나 형식도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다.
②갑자기 새로운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에 뚜렷한 문학적 흐름을 형성하려면 좀 더 시일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 언어적인 면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특성을 개발하면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계문학과 비교할 때 철학적·학문적 깊이의 결여는 앞으로의 과제라 할 것이다.
③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문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문학의 경우 소재나 규모가 분단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④기법이나 기교적인 면에서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지만 문학사적인 의의로서 춘원의 작품들을 신문학 70년사의 대표작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면에서 춘원의 문학은 오늘날의 문학이 존재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호철 소설가>급격한 사회변화에 비해 문학은 정체
ⓛ죽었던 우리말·우리 글이 되살아났다는 점과 함께 식민지문학을 탈피, 순수한 한국문학으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②그러나 해방이후의 한국문학은 그 같은 큰 의미를 계기로 삼는데 실패했다. 8·15이후의 급격한 사회변화는 예견된 것이지만 그것은 문학에 있어서 상업주의 팽배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흐름에 비해 문학은 편협일변도로 타락한 듯한 느낌이다.
③우리문학은 8·15로 인한 남북분단의 상황을 체념으로만 수용해 왔다. 「이데올로기」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맞부닥쳐야 했을 것이었다. 통일된 상태로 독립했을 경우 전혀 새로운 면모의 한국문학이 시작됐을 것으로 믿는다.
④작가 자신의 사상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8·15이전의 우리문학을 대표할만한 작품은 단연 벽초의 『임꺽정』이다. 우리민족의 핏속을 돌고 있는 혼백의 진수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청준 소설가>자력으로 못 이룬 해방…자생적 문학 요인
①문학의 명분이 바뀌게 된 계기로 본다. 즉 일제하의 문학은 투쟁의 목표가 분명했으나 그것이 없어짐으로써 새로운 명분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분단은 새로운 명분일 수 있었으나 해방을 자력으로 이룩하지 못한 약점 때문에 결국 자생적 문학「콤플렉스」의 계기가 됐다.
②획일적 삶의 규범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의 싸움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문학 속에서 폭넓게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편견의 문학」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③북의 현실을 문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받아들이면 안 되느냐 하는 문제의 갈등 때문에 스스로 위축된 현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우리문학 최대의 「딜레머」다. 「스케일」이 좁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④염상섭의 『삼대』는 당대의 현실을 가장 광범위하게 문학질서로 수용한 작품이다. 이밖에 해방전과 해방 후를 고루 활약한 김동리·서정주·황순원씨의 한국문학에 대한 공헌을 간과할 수 없다.

<김주연 문학평론가>해방 전 현실을 가장 널리 수용한 『삼대』
ⓛ②8·15는 한국문학의 존재의의와 목적이 전혀 새로워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8·15이전의 문학이 「수단」이었다면 8·15이후의 문학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전과 해방후의 작품을 비교하면 해방전의 작품이 같은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상황을 지나치게 의식한 반면 해방후의 작품들은 삶의 근본적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를 보였다.
③분단이라는 상황이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언어가 말살된 일제하에서도 우리문학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을 작가정신의 소산으로 볼 경우 분단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작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④해방 전 작품으로는 염상섭의 『삼대』를, 해방 후 작품으로는 김승옥의 60년대 작품들을 꼽고 싶다. 『삼대』는 일제하의 사회상 및 가능한 인간사의 측면을 압축시키고 있으며 김승옥의 작품들은 해방 후 사회적 격동 속에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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