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수난사 기록|백년전·풍물담은사진과 그림곁들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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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섭일특파원】1백여년전 「프랑스」외방교회의「리델신」신부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 잡혀 옥살이끝에 풀려난 기록이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어 한국 천주자회사및 당시 한국사료로서 주목된다.
1879년「파리」에서 간행된 이 책은『「리델」신부의 옥중기및 석방기』. 한국구구장으로 임명된 「리델」신부가 「프랑스」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 형식이다.
20여년후「아드리앵·르네」가 그것을 요약해『나의 서울 옥중기』를 발간한바 있는데 본래의 서간집 원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않던 새자료다.이 귀한 자료는「파리」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는 이송명박사가 최근에 찾아냈으며 국판 9O 「페이지」에 볼과한 것이지만 천주교를 박해하던 상황과 국제정세등이 상세히기록돼 있다.
많은 천주교들이 순교한 신미양효직후인 l870년 한국교구장으로 임명된「리델」주교는몇차례 입국을 꾀하다가 실패한 끝에 1877년9월 황해도 백천으로 상륙, 상제옷을 입고 서울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1878년1월에잡혀 포도청에 갇힌몸이 댔으며 그해7월 교수형을 모면, 중국으로 추방됐다.
이때는 대원군이 이미 실공한 뒤이며 외세의 압력에 못이겨 서서히 문화를 개방할 때다. 「리델」주교가 체포되 당시 함께 잡힌한국인 신도는 일부 처형됐지만 그가 추방되자 이어 고종의 개와주의가 실시됐다.
외방교회 신학교 명의로 된 이 책의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리델」신부는 그가 사랑하는 양제속에들어갔다...
그러나 옛날과 다른것은 하나도 없었다. 위험은 전과 다름 없었다. 박해령도 천주교도에대한 증오도, 순교자들의 피를 홀리게할 준비가돼있는 사형집행인들도 모두 전과 다름없었다.』
한편 이박사는「리델」신부의 옥중기를 샅펴보는 기회에 한국에관한 개화기의 책3권을「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는 편의를 그 도서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그것은 「로네」의 『한국과「프랑스」선교사』(1895년 「과리」간행) 및『「리델」 신부옥증기』(요약본· 1901년 「파리」간행) 가 포함돼 있다.이들 책에는 19세기말의 한국의상황을 보여주는「팬」장및 사진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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