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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1 vs 75 … 리더십이 갈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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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2012년 10월 미국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동부 연안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28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제인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 크레이그 퓨게이트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 릭 냅 국립허리케인센터장,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을 긴급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피해를 입기 전에 재난지역이 먼저 선포된 건 이례적이었다. CNN 등 미 언론들은 국립허리케인센터와 함께 샌디의 예상 진로를 추적하며 각 주정부의 대비태세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해안가 주민 수십만 명이 대피했고, 해일 등에 대비해 주 방위군 6만여 명이 움직였다.

 미리 대비한 재난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평가되던 샌디는 일주일에 걸쳐 24개 주를 강타했지만 사망·실종자 수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의 20분의 1도 안 됐다. 철저한 사전 대비와 대피 덕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해기간 동안 FEMA 점퍼를 입고 백악관 상황실, 피해 현장 등을 누비며 재난 대비와 피해 복구를 지휘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앞장선 지도자는 한 달 뒤 대선에서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이 샌디에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7년 전인 2005년 8월 미국 남부를 강타한 카트리나 사태 때문이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FEMA 청장은 아라비안 종마협회(IAHA) 회장을 지낸 마이크 브라운이었다. IAHA 회장 시절 감독 소홀로 쫓겨난 데다 재난 대비 경험이 전혀 없던 브라운은 일종의 낙하산 인사였다. FEMA 간부 8명 중 5명은 재난업무와 무관한 경력을 지녔다. 특히 2541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한 이 재난이 닥쳤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뉴욕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고,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메인주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뒤늦게 최대 피해 지역인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를 방문했지만 피해 주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피해 복구와 지원에 나선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손발이 안 맞았고, 의료품조차 제대로 지원이 안 됐다. 지난해 펴낸 자서전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캐슬린 블랑코가 민주당 출신이어서 내 지시를 듣지 않았다. 연방정부에 권한을 넘기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며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불협화음을 인정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문제는 리더의 능력”이라며 부시 대통령의 자질론까지 거론했다.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재난의 규모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는 교훈이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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