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미래 없다”는 현실 이겨내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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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씨가 최근 펴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주인공 현이립도 간암 말기임에도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글쓰기에 매진한다. 책에서 주인공은 “기력이 다할 때까지 쓰긴 쓸 것이다. 그것이 삶의 본질에 맞게 삶을 마감하는 길이니. 용기가 아니라면 오기로 버티면서, 깃발 휘날리며 진격하다 죽을 것이다”고 토로한다. 조용철 기자

인간이 죽는다는 거, 누구나 안다. 하지만 잊고 산다. 어쩌면 잊고 살아야 현재에 충실할지 모른다. 그러다 문득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 올 때, 우린 인간의 한계를 새삼 깨닫고 헛헛해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한국 사회에 남긴 상흔이 그렇지 않을까. 안타까움과 분노, 죄책감을 넘어 삶에 대한 근원적인 허무함 말이다.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소설가이자 보수 논객인 복거일(68). 그는 2년 반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만 몰두해 왔다. 자전적 소설이 최근 출간되면서 그의 투병기도 세상에 제법 알려졌다. 그는 왜 희망의 끈을 놓고 절망의 길을 택한 걸까.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서 우린 이토록 휘청대는데, 죽음과 늘 직면하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일상일까. 그로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단상을 들어봤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지낼 만해요. 글 쓸 만합니다. 암이란 게 한두 달 만에 나빠지는 게 아니니. 현재 지식으론 암이 왜 발생하고,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진화생물학이 발전하고 생명에 대한 근본적 틀이 바뀐 다음에, 의학이 그걸 따라가는 거니까요. 전체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을 제어할 줄 알아야 건강한 사회인데, 암이란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거죠. 인간 신체도 결국은 세포끼리 경쟁하는 사회예요.”

 -그런 악성 종양을 없애려고 수술을 받지 않습니까.
 “간암에서 전이돼 복강으로 옮겨갔고, 폐까지 반점이 나왔어요. 그때 직감했죠. 치료하면 애만 쓰다가 고생만 하다가 죽겠다. 작가라는 직업, 겉보기와 다릅니다. 체력 약하면 글 안 써져요. 글쓰기와 치료는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선배들 보세요. 침샘암으로 5년간 투병한 최인호 선배가 그랬고, 이청준 선배는 폐암, 홍성원 선배는 위암이셨죠. 그분들 글 재주,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뚝딱 해치워요. 그래도 치료받으면서 말년에 어디 인상적인 글 나오던가요. 그저 쉬지 않고 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글쓰기란 그런 겁니다. 전 경제학도예요. 주어진 조건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 겁니다.”

아픈 뒤 詩心 터지고 고통도 가셔
-무엇이 달라지던가요.
 “시간 주기가 짧아집니다. 멀리를 생각 못 해요.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1년 뒤가 무감해지는 거죠. 새삼 지도자는 병에 걸리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바로 코앞의 일 말고는 성가신데, 어찌 나라 일에 신경 쓰겠어요. 다행히 난 과학소설을 쓰니, 미래를 상상하고 공상하고 예측하는 게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길게 내다보곤 했는데…. 미래가 없다는 건 아득한 일이고, 그걸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책 여러 권 쓰셨습니다.
 “못다 쓴 책 쓸 거라고 집사람 설득하며 치료 거부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예전엔 할 짓 다 하면서 썼죠. 건수만 생기면 나가고, 술도 2차·3차 하고. 지금은 미룰 수가 없죠. 시간이 없으니. 결과물만 따지면 암 선고 전보다 3배 정도 됩니다. 2년 반 동안 10권 정도 썼어요. 내일 아침 죽는다는 것보다 사람을 더 집중시키는 것은 없다고 하잖아요.”

 -죽음을 달고 사는 삶이 어떤 건지 짐작이 안 됩니다.
 “제 또래가 대부분 70이에요. 그 나이라고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까요? 다들 어떡하면 더 즐길까, 뭘 하면서 놀까 그런 생각만 합니다.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떤 ‘시한’을 정해놓진 않죠. 모순되지만 그게 인간입니다. 반면 난 길어야 2, 3년 기한을 두니 그걸 받아들이는 게 힘든 거죠. 치료하겠다고 하면 0.1%의 희망이라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치료를 포기하면 가능성은 제로죠. 그걸 마음으로는 납득하는데, 몸은 아니더군요. 선고받은 첫날, 누워 자는데 숨이 콱 막혀왔습니다.”

 -마음은 받아들이는데 몸이 못 받아들인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마음은 이성이고, 몸은 본능인 거죠. 힘겹게 삶을 연명하느니 평온한 죽음의 길을 택한 건데, 나로선 그게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인데, 처절한 생명 본능이라는 잠재의식이 몸으로 튀어나오는 거죠. 자다 깨고, 자다 깨고 그러다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 끔찍했어요. 그렇게 한 달 반가량 지났을까. 새벽에 비가 내렸어요. 아파트에 애기 울음 소리가 들리고,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나고, 산소 잔디가 젖겠구나 싶다가, 후르륵 눈물이 흐르는…. 그러면서 마음에서 시가 나왔어요. 사실 그동안 소설 쓰느라 시심(詩心)은 안 떠올랐는데. 감정이 격발되니 시가 터진 거죠. 그날부터 고통이 가셨어요. 치유의 과정이었어요.”

 그는 “작가는 이기적”이라고 했다. “나이 마흔에 멀쩡한 회사 때려치우고 글 쓰겠다고 나섰어요. 그때가 결혼 6개월, 아내가 임신 3개월이었죠.” 아내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단다. “집사람은 예전부터 그랬어요. 작품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가볍게 버릴 사람이라고.”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의 표지

그런 탓인지 간암 소식을 듣고 병원을 나서면서 아내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한다. 그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딸이 “포기하지 말자”며 울면서 애원했지만, 그는 “암 진단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게 20여 년 전에 썼던 『역사 속의 나그네』(1991)야. 그거 속편 써야 돼”라며 치료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고, 딸이 직접 그림을 그린 에세이집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펴냈다.

 -그런데 암 발견한 지 2년 넘었으니, 이제 다시 살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기지 않나요.
 “예상보다 오래 가네, 행운이구나, 그런 느낌. 겉만 멀쩡하지 속이 어떻다는 건 제가 잘 압니다. 물론 나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옥의 시계추는 늘 흔들리니깐요. 사형수에게도, 불치병 환자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매일매일의 행, 불행이 있죠. 다만 글을 쓰니, 그걸로 달래고 정리를 하려고 애를 쓰는 거죠.”

 -외부에 알려진 다음 어떠셨나요.
 “보수 논객으로 그간 욕 많이 먹었잖아요. 병 걸렸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겠지 했죠. 그런데 아니에요. 어떤 선배는 전화 붙잡고 울먹이고, 누군가는 몸에 좋은 거라며 바리바리 싸 가지고 오고. 아 정말 고마웠어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집안 분위기도 밝아지고. 이래서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무리 속에 있어야 하는 걸, 추상적으로 알던 것을 구체적으로 경험했어요. 나이 70에도 새삼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아요. 아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마찬가지로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뭘 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울고, 화 내고, 얘기 듣고, 고개 끄덕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 물론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지만, 깊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첫째는 자식을 낳는 거죠. 육체적 산물을 남겨 유전자(gene)를 이어갑니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 산물입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걸 ‘밈(meme)’이라고 불렀어요. 사고방식이나 문화적 요소 같은 거죠. 결국 과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정신적 산물의 생산을 통해 육체적 산물의 부재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키는 게 합리적, 논리적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이번 사고 같으면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안전 의식을 높이는 시민단체 활동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물론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서른 넘은 딸이 있는데, 그 애가 없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으니깐요. 저도 딸 앞에선 그저 약한 아비일 뿐입니다.”

정부는 무능할 수밖에 없는 존재
-정부는 왜 이리 무능할까요.
 “미국의 정치가인 배리 골드워터(1909~98)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정부는 모든 걸 빼앗을 수 있다’. 우리가 과연 독재 정권을 원하나요? 아니잖아요. 그럼 무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압제를 막기 위해 국민이 무능을 집어넣은 겁니다. 이런 사고가 터지면 부랴부랴 대책 세운다고 하면서 또 규제를 만들겠죠. 그게 관료의 힘을 세게 하는 거고, 그럼 또 부패하게 돼요.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활동을 제약하게 하면, 그걸 지키는 것보다 뇌물을 써서 달래는 게 훨씬 빠르고 비용을 절약시키니깐요.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됩니다.”

 -국가안전처가 신설된다고 합니다.
 “최악의 해결책이죠. 관료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규제와 감시가 없어 사고가 난 게 아니잖아요. 국가안전처 신설은 옥상옥이며, 관료들 자리만 만들어주는 겁니다. 앞이 뻔히 보입니다. 또 대형 사고 나면 ‘국가안전처’ 대통령 직속으로 할 거고, 또 사고 나면 이젠 ‘안전특별위원회’를 만들자고 하겠죠.
 소비자가 선택하게끔 하는 게 유일하면서 가장 안전한 방안입니다. 항공사가 툭하고 사고 내면 누가 그 비행기를 타겠어요. 삼성·LG 등 우리나라 가전제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게 국내 안전검사 덕분은 아니잖아요. 규제·감시가 아니라 고객이 안전한 배를 선택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는 어땠나요.
 “답답하죠. 근데 한번 물어봅시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더 잘했을지. 경제민주화 한다고 지난 1년 허비하느라 모멘텀을 잃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취임 초기에 그 속도로 개혁해야 했었는데. 인사 문제 등으로 본인도 아파하지 않았겠어요. 엄청난 과제 앞에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복거일(卜鉅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뒤 은행·기업·연구소 등에서 일하다 87년 『비명을 찾아서』라는 장편을 내놓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과학·미래소설을 써 왔고, 사회·경제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98년엔 영어를 국어와 함께 쓰자는 ‘영어공용화론’으로 논쟁을 일으켰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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