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서비스는 이미 의료민영화 상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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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한 쪽에서는 의사만 병·의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의사 면허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 실제 한국규제학회와 한업연구원은 의료서비스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중 하나로 '의료기관 개설자격 제한'을 지목했다.

반대로 의료계는 의료 적정성을 유지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서는 개설주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의료기관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조산사·의료법인·비영리법인·준정부기관·지방의료원·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 제한적으로만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또 주식회사에서 병의원을 개설하려면 별도로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법인이 영리인지 비영리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법인이 그 사업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주주 또는 사원에게 분배해, 주주나 사원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여부에 따라 갈린다.

실제 삼성의료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현대아산병원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이 개설 주체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의료기관 개설주체 논쟁에 대해 알아봤다.

▶의료기관 개설 제한 자체가 진입장벽

최근 정부는 서비스산업 육성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덩달아 의료기관 개설 주체 확대 논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김주경 입법조사관(보건학 박사)는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둘러싼 논의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의료기관 개설 주체에 대해 분석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아닌 일반인·영리법인도 의료기관을 개설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의료서비스 시장 진입제한을 해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지속적으로 논의돼왔다. 시작은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차별화·고급화로 서비스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시장진입장벽 등 규제를 풀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논의된 규제개선 중 하나가 바로 의료기관 개설 제한을 없애는 방안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논의를 재개했다.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는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기관에 자본이 다양한 경로로 투자하도록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 다음해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갔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허용을 위한 객관적인 근거자료 확보를 위해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간 이견과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대여론으로 해당 논의는 유보됐다.

박근혜 정부 역시 고용없는 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콘텐츠 등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제시했다. 여기에서는 의료기관 개설 제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대신 의료기관이 부대사업을 목적으로 자법인을 설립하도록 허용하거나 부대사업 범위를 현재보다 확대 방안을 제안했다. 또 의료법인끼리 인수·합병을 허용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의 원격의료, 영리자회사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결의했으나, 병협은 병원경영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정책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의료 민영화 논란은 현재 진행중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시장진입 자체를 막는 것이 차별인지 여부다. 의료기관 개설을 두고 의사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독점적 권한을 주는 것 그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 이들은 의사에게 의료기관 개설에 대해 독점적 권한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런 진입규제는 잠재적 공급자와 자본 투자를 제한해 의료산업의 성장을 막는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시장 진입장벽을 낮추고 선의의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국민 후생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반면 시장진입 제한을 주장하는 측의 시각은 다르다. 이미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의료법인 등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장벽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개인 자격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두번째는 영리행위 기준에 대한 불균형 문제다. 이번에는 이미 개설한 의료기관 내 차별이다. 의사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은 개인사업자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 세법을 적용할 때도 소득세법을 따른다. 의사가 병의원을 소유하거나 매각·상속도 할 수 있다. 사실상 병의원은 일반 기업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법인은 비영리법인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같은 의료기관인데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런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영리법인도 의료기관 개설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영리법인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한 것은 의료법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90%에 달하는 개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이 비영리적 진료행태를 해결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고로 2012년을 기준으로 의료기관 개설주체가 개인(의사)인 의료기관은 종합병원은 24%, 병원 59%, 의원 97%다.

마지막은 의료민영화 논쟁이다. 영리법인에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했을 때 얼마나 파급력이 어떨지에 대해서다.

순기능으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기관 회계 투명성·경영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전문 진료과목으로 특화한 병원은 대규모 자본 유치가 쉬워질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민영화 걱정하는 측은 대자본을 바탕으로 한 기업형 병원이 국민 건강보호라는 공익보다는 영리 추구를 우선시해 의료수요를 창출하고 비급여 진료를 개발하는데 전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외에도 필수 전문과목 진료나 의학교육 등 수익성이 좋지 않은 분야는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의료비 지출이 늘고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계층별 위화감을 조성, 의료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낮은 보험수가·행위별 수가제부터 개선해야

오히려 의료민영화라는 민감한 이슈에 가렸다는 주장도 있다. 김 입법조사관은 "정작 고려해야 할 사항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의료서비스 선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때 공공성과 의료윤리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외에도 의료민영화의 의미 역시 재정립되야 한다. 그는 "의료기관 개설주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은 병의원 개설자의 90%가 의사 개인이기 때문이 이미 민영화 된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개설 주체가 누구인지 따지기 보다는 민간 공급자가 의료공공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유인 동기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행위별수가제 중심의 진료비 지불방식과 낮은 보험수가 같은 의료서비스는 영리추구 수단이 되는 것을 촉진한다"며 "개설주체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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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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