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해묵은 빚 독촉에 곤욕 치르는「브레즈네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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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주섭일 특파원】「브레즈네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전례 없는 후문을「파리」에 뿌리고 갔다. 그가 개선문의 무명용사 무덤에 화환을 증정하던 순간 일단의 우파「데모」대가 게양됐던 소련 기를 불태웠다. 도착할 때부터 『꺼져라, 인권탄압의 두목』『「브레즈네프」=강제수용소』등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브레즈네프」를 고민시킨 것은 제정「러시아」때 빌어 간 해묵은 빚을 갚으라는 규탄이었다.
『당신은 왜 빚을 갚지 않았는가』라는 벽보가 도처에 나붙었다. 사연인즉 1880년부터 1914년까지「러시아」황제는 「프랑스」부터 3천만「프랑」의 금화를 꾸어 갔다는 것이다.
당시「프러시아」(독일)의 침략적 확장정책에 불안을 느꼈던「프랑스」와「러시아」는 동맹을 맺어 대항했었고 재정적으로 파산 위기에 빠진「짜르」황제를「프랑스」가 지원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짜르」는「파리」를 방문, 연 4.5%의 이자를 지불하겠다고 공언, 「프랑스」국립은행이 공채를 발행해서 빌려주었던 것.
그런데 1917년 10월「짜르」황제를 붕괴시키고 공산정권을 수립한「레닌」은 제정「러시아」가 맺은 모든 계약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1백여만명에 달하는「프랑스」의 예금자들은 1918년 채권단을 구성,「레닌」에게『이자는 그만두고 원금만 갚으라』고 교섭했다.
채권단의 요청은 철저히 묵살됐다.「파리」주재 소련대사관 앞에서「데모」도 했으나 반응은 침묵뿐이었다.「프랑스」의 무성을 통해 교섭했으나『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75년「지스카르」대통령이「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했을 때「브레즈네프」서기장에게 이 문제를 내밀었다.
「브레즈네프」는『노』라는 한 마디로 응수하고 그 대가로「지스카르」대통령을 푸대접했다는 전문이다.
이번「브레즈네프」서기장의「파리」방문 시「지스카르」대통령은 다시 이를 제시했다는 후문.
1세기전의 3천만「프랑」의 금화를 오늘날 화폐로 따지면 약 3조억「프랑」(6천억「달러」)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브레즈네프」서기장이 이 막대한 돈을 갚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스카르」는 항상「브레즈네프」를 늘리는「카드」를 갖게 되고「브레즈네프」는「프랑스」를 상대함에 항상 부채를 걸머진 채무자의 고민을 안고 나올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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