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내일』과『인샬라』(신의 뜻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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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언젠가 D건설의 L상무가「이란」업자와 공사계약을 위해 「테헤란」에 왔을 때의 일.
적어도 상무 급 인사의 출장이라면「네고」단계를 넘어 계약체결만 남아 있기 때문에 「사인」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약속된「내일」이 한 달을 넘어섰고 그 한 달이 또 1백일로 늘어났다.
당초 2주 예정의「테헤란」출장인지라 주머니 사정마저 극도로 악화,「호텔」생활이 친구 집 곁방살이로 변하더니 드디어는「택시」값마저 얻어 쓰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참다 지쳐「이란」업자에게「내일」의 한계를 따져 물었더니 대답도 간단하게「인샬라」(신의 뜻대로). 이래저래 체면이 말아닌 L상무는 현지에서「불명예 제대」-.
이처럼 중동의「내일」만 믿다가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마디로 중동의「내일」이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에서「테헤란」행 비행기 좌석 때문에 여행사를 찾았다고 하자.「내일」쯤 찾아오면 좌석을 주겠다던 그「내일」이 3일을 넘어 1주일쯤 지나서야 비로소 여행자는 「내일」의 의미를 터득하고 비행기 여행을 포기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내일」도 중동 어느 곳에 못지 않다.
어쩌다 「콜·택시」라도 부르면 2∼3시간쯤 기다리기가 일쑤며 행여 제시간에 왔다해도 『10분쯤 쉬다가 가자』는 말이 운전사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온다.
「내일」, 또「내일」로 미루다가는 서슴없이「인샬라」하고 외치는 중동인의 기질-.
더위 탓일까, 무미건조한 사막생활 탓일까, 아니면「오일·달러」의 위력이 시간의 세계까지 지배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일까.
섭씨 45도쯤의 살인더위 속에서 타인의 부탁이 문제일리 없고, 무미건조한 사막생활이 시간관념을 불어넣었을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현대판 여의주라는「오일·달러」의 주인공으로서 지나가는 나그네쯤이 눈앞에 보일 리 없다.
「내일」만 믿다가「쿠웨이트」취재를 망치고만 어느 미국인 기자는「내일」은 절망이며 「인샬라」는 희망』이라면서 두 글자의 의미를 터득한 것만으로도 중동 여행은 만족스럽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내일」과「인샬라」의 원인을 자연조건에서 찾으려는 환경 설을 내세우나「오일·달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기보호세도 무시될 수가 없겠다.<이근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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