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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떠나자] 모스크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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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과 크렘린궁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1941년 붉은 군대의 출병식과 1945년 2차대전 전승 퍼레이드를 할 땐 세상을 곧 변화시킬 듯한 기세를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연방이 붕괴되면서 냉전시대를 마감한 지금은 지나간 역사의 현장일 뿐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의 쉼터이자 낯선 이방인들의 관광 명소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봄이 성큼 다가온 지난달 11일. 붉은 광장은 크렘린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제대로 찍기가 어려울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거리에서 입맞춤을 하는 연인, 맥주병을 손에 쥔 젊은이 무리. 여기에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피부색의 관광객까지 가세해 가위 인산인해였다.

모스크바 여행은 이곳 붉은 광장에서 시작한다. 붉은 광장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그리고 정치.군사.예술의 심장부이며, 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광장은 크렘린궁, 역사박물관, 굼 백화점, 바실리 성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광장의 중심에 서서 둘러보면 크렘린 성벽과 역사박물관을 제외하면 빨간색이 보이지 않는다. 크렘린 성벽 정반대에 있는 굼 백화점은 흰색이다. 바실리 성당은 알록달록 화사한 색채를 뽐내고 있다.

길이 7백m, 폭 1백30m인 광장 바닥은 검은 돌이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파랗다. 상하좌우.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머리에 각인된 '호전적 의미'의 붉은 광장이 아니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붉은'이라는 의미는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스크바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런던의 템스강과 파리의 센강을 따라 런던탑과 콩코르드 광장 등이 이어지듯 모스크바 강변에도 바로크 양식의 러시아 외무성 건물,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러시아호텔, 러시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예수 구원의 교회'등 유서깊은 건물이 즐비하다. 트레차코프 미술관.노보데비치 수도원.전승공원.모스크바 대학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모스크바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흡사한 아르바트 거리는 외국 관광객과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명소다. 차없는 2㎞의 거리엔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초상화를 그려주는 배고픈 예술가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자유의 거리이기도 하다. 소련 몰락기에 저항과 자유를 담은 음악으로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고려인 3세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벽이 있는가 하면 세계의 여행가들이 자유롭게 낙서할 수 있는 '세계의 벽'도 이곳에 있다.

이밖에도 시내 곳곳에 세워진 차이코프스키.톨스토이.푸슈킨 등 세계 예술사를 뒤흔든 인물들의 동상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아쉬운 점은 출입국 절차, 언어, 화장실 등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모스크바 관광위원회 에레나 부위원장은 "현재의 모스크바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인정하고 "하지만 관광활성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외래어 표지판을 세우고 관광안내소를 설립하는 등 열심히 노력 중인 만큼 곧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유지상 기자

*** 여행쪽지

모스크바로 매주 대한항공이 두차례,아에로플로트항공이 네차례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약 10시간 걸린다. 시차는 원래 서울보다 6시간 늦는데 요즘은 서머타임제 때문에 5시간 늦다. 화폐는 루블(ruble)화. 원화를 달러(1달러=1천2백원)로 바꿔 현지에서 루블(1달러=30루블)로 환전하면 4만원이 대략 1천루블이 된다.

입국할 때 소지한 달러나 유로화를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서 없이 다니다가 경찰 검문에 걸리면 외화 불법소지로 유치장 신세를 질 수도 있다. 입국 때 신고한 금액보다 달러가 많아도 출국할 때 압수당한다.

이밖에도 모스크바 여행은 아직 불편한 점이 많다. 러시아어를 모르면 배낭 여행이 불가능할 정도다. 공항과 호텔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통용되지 않으며 영어 안내판도 찾아볼 수 없다. 경찰도 믿기 어렵다. 길을 잃었다고 경찰을 찾았다가 오히려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모스크바 시민도 돈을 뜯길까봐 경찰을 피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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