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대륙붕 쇼」막전 막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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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대륙붕 협정의 일본의회 비준이 좌절상태에 빠지자 양국 관계는 박동진 외무장관 말대로 『거북스런 상황』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정부관계자는 『남은 것은 이제 금고 속에 비장해 두었던 대응 「카드」를 꺼내 하나씩 덜어 놓는 것』이라고 했고 일본 외무성은 30일 「니시야마」대사를 불러 서울이 내놓을 「카드」읽기를 할 움직임. 대륙붕협정 파동은 비바람을 몰고 올 기상도다.
동경에서는 29일 김영선 주일대사의 사의 표명설도 나돌아 한 때 긴장. 일본 중의원본회에 대륙붕협정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자 김 대사가 본국정부에 사의를 전했다는 뜬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
그러나 대사 측근이 소문을 추적한 결과 김 대사가 최근 「비준」의 중요성을 강조, 『진퇴를 걸고 비준문제 노력 중』이라고 초조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 확대,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배신행위에 가장 격분한 것은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들.
『일본정부와 자민당을 믿고 일할 수 있겠느냐』『한일외교는 새로운 좌표를 설립, 재정립해야 한다』『친한파 의원 중심 대일 외교시대는 벌써 지났다』는 등 대일 불신론이 팽배해있는 실정.
일본 외무성은 30일 현재 이번 결과에 공식적인 견해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으나 외무성 관계자는 29일 새벽 한국대사관 측에 전화를 걸어 『국회 회기연장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고 연락, 변명.
이에 대해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본국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수립해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측에 있다』고 분명히 대답해 주었다는 것.
한 대사관 관계자는 『일본 외무성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한국의 대일 감정인 것 같다』고 진단.
정부가 일본 정부의 「금 회기 중 비준」약속을 구체적으로 의심하고 대응조처 모색에 나선 것은 지난 19일. 김영선 주일대사가 「하도야마」외상을 방문, 『대소 어로 교섭에 있어 일본으로서는 12해리 영해 및 2백 해리 어업 수역 조기 선포가 시급한데 이를 위해서는 야당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 본국에 보고를 했을 때.
보고를 받은 외무부는 「하도야마」외상의 발언이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한일 대륙붕 비준안을 양보 「카드」로 쓰겠다』는 뜻이라고 판단, 즉각 「니시야마」 대사를 불러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달.
우선 정부는 김 대사를 통해 『최근의 한일관계는 비상하고도 중대한 시기에 처해있다』(21일)며 일본의 성의를 촉구하고 비준안의 통과에 대한 우리의 압력과 경고를 표면화하는 한편 비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 점검에 나섰다.
일본 「매스컴」이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부산한 움직임을 「대일 엄포용」으로 해석했고 「니시야마」대사까지도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에스컬레이트」한다』고 불평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고위층일수록 더욱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
일본 의회의 대륙붕협정 비준안 처리를 앞두고 우리 국회의원 몇 사람은 긴급 도일.
한일 의원연맹 한국측 간사장인 이병기 의원(공화)과 연맹 간사이며 일본 민사당과 인연이 깊은 김수한 의원(신민)이 주초 소리 없이 동경으로 날아간 것.
한일 협력위 일본 측 간부이며 각료인 거물급 인사는 한국 측 사무총장인 김주인 의원(공화)에게 26일 저녁 전화를 걸어와 『협정 비준이 지연 돼 한일간에 시끄러운 문제를 야기 시킨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번에는 꼭 통과 될 것이니 박정희 대통령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뜻을 전해달라』고까지 했다는 것.
일본은 끝까지 얄팍한 외교적 「제스처」로 우리를 속였다』고 주장하는 외무부 관계자들은 그 동기를 두 가지로 분석.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특징을 「컨센서스」를 구하는 것에서 풀어 가는 한 소식통은 『일본의회처럼 절차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쇼」가 무성한 곳도 없다』고 평가, 이번「제스처」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분석.
또 다른 쪽은 애당초 「후꾸다」내각과 자민당이 야당의 반대 속에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 의식적으로 「쇼」를 연출했다고 주장. 자민당은 대소 어로교섭을 앞두고 모처럼 형성된 거당 체제를 깨고 시급한 그들의 2대 해양법안에 대한 장애를 감수하면서까지 기름이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는 대륙붕에 모험을 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와있다.
비준안 통과 실패는 때마침 이틀째 열리고있던 29일 국회외무·국방위 연석회의에도 즉각적인 충격파를 몰고 왔다.
신상우 의원(신민)은 대뜸 「독도기점 2백 해리 경제수역선포」용의를 물었고 이어 등단한 오유방 의원(공화)도 한일대륙붕협정 파기를 주장.
황호동 의원(신민)은 한술 더 떠 흥분했다.
『일본 「놈」들 꼴불견인 것을 보기 싫으니 한일 어업협정을 폐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괘씸하다. 조그만 섬나라 일본에 농락 당한 치욕을 무엇으로 씻겠느냐. 이들의 콧대를 꺾기 위해 눈에는 눈, 입에는 입식으로 일본과 기왕에 맺었던 모든 협정을 파기할 용의가 없느냐-.』오정근 의원(유정)같은 이는 『시종 정치적 장난으로 일관한 인상이 짙다』고 규정.
답변에 나선 박동진 외무장관은 비준안이 일본 중의원 외무위를 통과한 그날엔 『2백 해리 경제수역 선포를 「유엔」해양법 회의결과를 기다려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이날 본 회의 통과가 실패하자 『새로운 요소의 등장으로 보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전진자세.
이철승 신민당 대표는 28일 비준안이 외무위를 통과하자 『민사당의 참여로 이뤄진 것』이라며 『그 동안 신민당이 민사당과 긴밀한 유대를 맺어온 결과』라고 자찬했으나 이날 본회의 통과 실패에 대해선 「노·코멘트」.
정부의 단독개발방침에 대해 워낙 방대한 한일 경제협력문제를 들어 가능성에 회의를 피력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중공이 직·간접적으로 간섭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 「유럽」계 회사들이 과연 참여할 것 인가도 아직까지 미지수라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정부 모 차관은 『지금까지 엄두를 못 냈지만 막상 한일 경제협력관계를 종합 검토해 봤더니 의외로 큰 문제가 없더라』고 주장.
박동진 외무장관은 구미지역을 순방해 본 결과 「유럽」자본의 도입전망이 밝음을 확인했다고 지적했고 외교소식통들은 『한국보다 한일 공동규제수역에서 10배 이상 많은 어획고를 올리고 있는 일본이 동해 어장을 잃으면 오히려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
2백 해리 경제수역의 조기선포가 일본에는 가장 아픈 「쇼크」를 줄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견해가 일치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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