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우즈도 헷갈린 골프 규칙 … 드롭 잘못해 실격할 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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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3면

중앙포토

지난해 4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 참가한 선수와 캐디들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깃대가 평소에 비해 두 배 정도 두꺼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단하고 커진 깃대에 공이 맞아 그린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생긴 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깃대 굵기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두꺼워졌든 아니든 깃대에 공을 맞혀 불리한 일을 당한 선수가 나왔다. 타이거 우즈였다.

 2라운드 막판 우즈는 분위기가 좋았다. 바람이 꽤 불던 이날 보기 없는 유일한 선수가 그였다. 우즈는 공동선두로 15번 홀에 들어섰다. 2008년 US오픈 후 5년 만에 메이저 우승 기회가 왔다.

 그는 파 5인 15번 홀에서 85야드를 남기고 60도 웨지로 완벽한 컷 샷을 쳤다. 너무 완벽했다. 하지만 볼은 깃대를 맞고 왼쪽으로 크게 튀면서 연못에 빠졌다. 우즈는 분노를 식힌 후 다섯 번째 샷을 했다. 볼은 홀 옆에 붙었고 1퍼트로 홀아웃, 보기로 마무리했다.

전직 경기위원이 부인 심부름 하다 녹화
데이비드 에거라는 전직 경기위원은 집에서 60인치 TV로 마스터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우즈가 15번 홀에 가기 직전, 부인이 정원 손질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TV를 녹화모드로 바꿔놓고 정원에 다녀와서 15번 홀 장면을 돌려 봤다. 물에 빠진 후 샷을 할 때 근처에 디봇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녹화를 해뒀기 때문에 다시 돌려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벌타였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신고하려던 게 아니라 우즈가 이를 모르고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한다면 실격이 되기 때문에 그 전에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공이 물에 빠졌을 때 1벌타를 받고 다음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먼저 친 곳에서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치거나, 공이 물에 빠지기 직전 통과한 해저드 가장자리와 홀을 연결한 직선상의 후방 지점이다.

 우즈는 원래 공을 친 자리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 샷을 했다. 우즈는 먼저 친 장소, 즉 디봇이 난 바로 옆에서 치거나 공이 왼쪽으로 튀어 물에 빠졌기 때문에 물에 빠진 왼쪽 연못과 홀을 연결한 선의 후반으로 가야 했다. 우즈는 두 옵션을 혼동해서 친 자리 근처가 아니라 친 자리 후방으로 가서 드롭을 한 것이다.

 뒤로 물러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할 수도 있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클럽별로 샷 거리가 일정하다. 뒤로 물러나 자신의 클럽과 맞는 거리, 혹은 가장 좋아하는 거리에서 샷을 한다면 이득이지만 벌타다.

 물에 빠졌을 때 또 하나의 옵션이 있다. 빨간색 말뚝으로 표시한 래터럴 워터 해저드(일반 해저드는 노란색 말뚝)의 경우, 공이 마지막으로 해저드를 통과한 가장자리 지점에서 2클럽 이내로 홀에 가깝지 않도록 해저드 밖에 드롭할 수 있다. 지형적으로 해저드 뒤쪽에 볼을 드롭하기가 어려울 경우에 빨간색 말뚝을 꽂는다. 또 로컬룰에 따라 드롭존을 만들어 놓은 경우 그곳에서 칠 수 있다.

 전직 경기위원 에거의 제보는 경기위원장 프레드 리들리에게 전해졌다. 리들리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미국골프협회(USGA) 회장을 역임했고 오거스타 내셔널의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였다. 그는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도(프로로서 미래를 보장받고도) 프로로 전향하지 않은 마지막 골퍼다. 아마추어 정신을 지킨다면서 프로가 되지 않은 보비 존스를 흠모해서다.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가 만든 오거스타 클럽 회장은 그의 마지막 꿈이었을 것이다.

 리들리는 룰 위반을 제보한 에거와 사이가 나빴다. 에거의 제보를 검토는 했다. 그러나 룰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덮었다. 우즈는 몇 발자국을 옮겼는데 그는 ‘가능한 가까운 거리’라고 결론 냈다.

우즈 인터뷰가 되레 실격론 불붙여
왜 그랬을까. 그해 마스터스는 룰 때문에 시끄러웠다. 중국에서 온 14살의 천재 소년 구안 티안량은 마스터스 사상 처음으로 ‘슬로 플레이’로 벌타를 받았다. 80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슬로 플레이 벌타를 어린아이에게 준 건 너무했다는 여론이 있었다. 야심 많은 리들리로선 우즈에게까지 벌타를 주는 것이 부담이었을 것이고, 미운 에거의 제보를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더 큰 실수를 한다. 선수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관례지만 하지 않았고, 다른 전문가들에게도 묻지 않았다.

 우즈는 벌타가 포함되지 않은 스코어에 사인을 했다.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또 불운한 일이 터졌다. 그는 잘 친 샷이 물에 빠진 15번 홀의 억울한 상황에 대해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공이 깃대에 맞고 물에 들어가 원래 친 자리에서 2야드 뒤로 물러나 샷을 했다”고 말했다. 2야드는 가능한 가까운 곳이 아니다. 그는 그때까지도 룰을 혼동하고 있었고, 명백한 벌타라고 본인이 증언을 한 셈이 됐다. 명백한 실격이기도 했다.

 밤늦게 SNS가 들썩였고, 다음날 새벽 기자들이 나와 우즈 실격에 관한 기사를 준비했다. 우즈는 위원회로 호출되어 전날 상황을 소명했다. 얼마 후 2개 매체에서 우즈가 실격 대신 2벌타만 받는다는 기사가 떴다.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이니 특종이었다. 두 기사 모두 우즈가 실격되지 않은 건 해링턴 조항 때문이라고 썼다.

 2011년 유러피언투어 아부다비 챔피언십에서 파드리그 해링턴은 7언더파를 쳤는데 그린에서 공이 살짝 움직이는 모습이 HDTV에 잡혔고 경기 후 제보가 들어왔다. 룰을 어긴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스코어카드에 사인했다면 실격이 아니라 벌타만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즈에게 해링턴 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다. 우즈는 규칙을 위반했는지도 몰랐지만, 그에 앞서 규칙 자체를 헷갈렸다. 경기위원회가 여론의 반응을 보기 위해 해링턴 조항을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

 위원회는 몇 시간 후 우즈에게 2벌타만 매긴다고 발표했다. 근거는 골프규칙 33조라고 애매하게 해놨다. 33조는 경기위원회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8가지 조항이 있는데 그중 7항은 위원회의 재량에 관한 것이고, 7항의 4.5가 이른바 ‘해링턴 조항’이다.

 결국 리들리가 기자실에 나타났다. 기자들은 리들리가 해링턴 조항을 들먹이면 상어 떼처럼 달려들 기세였다. 리들리는 우즈가 실격되지 않은 근거는 해링턴 조항이 아니고 그냥 33조 7항이라고 했다. ‘예외적인 개별적 사정에 따라 조치가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 경기 실격의 벌을 면제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리들리는 “우즈가 경기를 마치기 이전에 위원회가 벌타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므로 특별한 상황이고 그래서 실격을 면제해준다”고 했다.

우승 놓친 게 우즈에겐 결과적 행운
리들리의 주장 일부는 맞다. 위원회가 벌타가 아니라고 판정했다면 벌타가 아니다. 잘못 판단했더라도 위원회의 실수이지 선수는 책임이 없다. 리들리는 우즈에게 면죄부를 주고 자신이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그래도 모순이다. 위원회가 벌타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뒤늦게 벌타를 줄 이유도 없다.

 닉 팔도, 그레그 노먼, 조니 밀러 등 선배 골퍼들은 “큰 업적을 쌓아온 우즈의 명예가 특혜 의혹으로 실추될 상황이어서 우즈가 곧 자진 실격을 선언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즈는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경기에 계속 나섰다. 지난해 골프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스터스 ‘드롭 게이트’의 진실이다.

 깃대가 두껍지 않았다면, 제보자의 부인이 그를 정원 일을 시키지 않았다면 우즈는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우즈는 불운했다.

 그러나 반대로 골프 저널리스트들은 우즈의 행운이라고도 본다. 우즈가 특혜 속에 경기를 강행해 우승했다면 그의 섹스 스캔들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명예실추가 됐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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