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盤上)의 향기] 60~70년대 프로, 바둑·술·놀이 3중주의 ‘절정기’ 향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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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6면

1960년대 중반 기사(棋士) 야유회에서의 카드놀이.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덕규·강철민·김인·정창현·정동식. 당시 바둑과 놀이, 술은 한지붕 세가족이었다. [사진 한국기원]

술 마시는 건 즐겁다. 술 얘기도 그렇다. 조선 정조 때의 화가 최칠칠(崔七七·1712~86)의 일화에 이르면 즐거움은 극적이다. 그는 금강산 유람 중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구룡연(九龍淵) 차가운 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천하명사(名士)는 마땅히 천하명산(名山)에서 죽는다”고 큰소리쳤는데, 주변을 놀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⑤ 시간과 자유의 두 얼굴

그는 바둑도 좋아해서 조선조 바둑 이야기에 종종 등장한다. 술과 바둑, 그리고 세상을 초탈한 한때.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초탈을 달리 말하면 기행(奇行) 정도 되겠다.

술과 기행이라면 조훈현의 실전 스승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1925~2009)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중증이었다. 큰 승부를 앞두고 대국 2주 전부터 술을 끊을 때엔 끔찍한 금단현상이 찾아왔다. 무섭게 떨리는 신경줄과 불안에 감기는 의식. 입원도 몇 차례 했다. 경륜(競輪)은 그가 좋아했던 놀이. 많이 잃었다. 그러나 돈은 언제나 빌릴 수 있었다. 타이틀을 방어하면 갚을 돈이 생기니 신용이 좋았다. 슈코에겐 삶 자체가 중증이었다.

바둑과 술과 놀이는 딱 어울리는 삼중주다. 한국에선 1960~70년대가 삼중주의 클라이맥스였다. 당시 프로들은 술을 어지간히 마셨다. 시간은 길고도 길어서, 80년대 중반 유창혁과 이창호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명정(酩酊)에서 깨어난 기운이 관철동 한국기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이 마셨다. 많이 놀았다. 누구나 그런 한때가 있지만 대체 왜 그랬을까. 바둑이란 게, 특히 60~70년대엔 프로 바둑이란 게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64년 한국은 프로와 아마를 구분했다. 본격적인 프로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이미 단(段)을 갖고 있던 분들은 선택을 했다. 한학자 우전(雨田) 신호열(1914~93) 선생은 2단이었는데 바둑은 당신의 천직이 아니라면서 아마로 남았다. 64년엔 프로가 34명이었다.

후지사와(오른쪽)와 조훈현(1984년).

후지사와, 대국 전 금주 … 금단현상 극심
전문기사(專門棋士)는 이름 그대로 바둑을 생업으로 삼은 사람. 가외로 다른 일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프로가 직업이었다. 프로는 자유직이다. 생활은 얽매인 데가 없다. 기전(棋戰)에 나가서 대국할 권리는 있지만, 기권할 권리도 있다. 의무는 없었다. 이들이 술을 마셨다. 많이도 마셨다.

일상을 그려보자. 한 달에 두어 판 대국이 있다. 열심히 둔다. 늦은 오후, 저녁 어스름엔 대국이 끝난다. 밥집으로 간다. 밥 겸 술을 한다. 그 다음엔? 여관으로 가서 카드나 화투, 마작을 한다. 밤늦도록 끝나지 않는다. 때론 하루 이틀 사흘. 심할 경우엔 여관에서 놀다가 잠깐 나와서 대국을 치르기도 했다. 술은 가난과 함께 언제나 옆에 있었다.

이런 세계가 한국기원이 자리 잡았던 관철동에 있었다. 그 세계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출발은 프로가 되면서부터다. 프로 입단 전엔 공부를 한다. 무섭게 공부한다. 프로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타이틀을 따는 입신양명이야 입단 다음의 문제다. 정치판에서 권력을 탐하는 것은, 바른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권력이 먼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단은 목적에 앞선다.

10대, 20대 건강한 몸과 짱짱한 정신을 갖고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입단에 성공했다고 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곧 현실이 다가온다. 입단에 취한 순간 바둑에서 가장 무서운 적(敵)인 ‘시간’과 ‘자유’가 다가온다.

시간과 자유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것은 고마운 재화겠지만 자유직인 프로에겐 끔찍한 것일 수 있다. 입단해서 하루 이틀은 자유와 시간이 감미롭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건 잠깐. 그런 날은 머잖아 종말을 고한다. 시간과 자유가 넘치기 때문이다.

넘치면 주체하기 어렵다. 쓰고는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문제는 방법을 아는 것도 어렵고 실천도 어렵다는 데 있다. 방법은 어디서 오는가? 배워야만 찾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방법을 쉽게 배운다. 어디서? 주로 조직에서 배운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그 배움터다. 삶의 반(半)은 사회가 맡아준다. 그러나 홀로 배우는 것은 힘이 든다. 프로는, 남들은 쉽게 얻는 삶의 반마저도 스스로 채워야 한다. 자유직의 고통이다.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삶은 무상한 것. 공허한 것. 그것을 안다. 그 자각을 일러, 그것도 부정적(否定的)으로 자각하는 것을 일러 우울증이라 정의하자. 삶의 공성(空性)을 부정하는 것은 삶을 오해하는 것이다. 오해는 병인(病因)이다.

60~70년대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도시의 소외와 가난은 현실이었다. 바둑은 이겨도 돈이 되지 않았기에-기전 규모가 작았다-공부 의욕은 클 수가 없었다. 돈은 없는데 시간과 자유는 남아돌았다. 그러면? 그러면 시간의 가치가 줄어든다. 아무렇게나 써도 아까운 줄 모른다. 물론 몸은 안다. 젊은 시절, 젊음을 알아주는 것은 몸뿐이다. 정신은 아니다. 의식은 민감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음이 곧 지나갈 것을 몸은 안다. 몸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서 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몸의 장엄 중에서 제일은 술이다.

순간순간 위험을 직감하지만 뛰어난 재능은 잠깐만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외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청춘은 순간이다. 술 한 잔에 지나간다.

슈코는 술과 바둑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다. 그는 “인생에 단 한 수만 얻어도 만족한다”고 했다. 그것을 바란다 했다. 그러나 그런 수가 자주 올 수 있나.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나. 구하고자 해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단 한 수’다. 기보1과 기보2는 후지사와 스스로 자부하는, 일생에 남을 만한 ‘이 한 수’다.

기보1은 83년 도전자 조치훈 9단을 맞은 제7기 기성전 2국. “에라, 모르겠다!” 한마디 던지면서 두드린 것이 백1. 상변 흑 세력과 우변 흑진을 삭감하는 담대한 시도.

기보2는 79년 이시다(石田) 9단을 도전자로 맞은 제3기 기성전 4국. 52분의 장고 끝에 “광대무변(廣大無邊)이야 광대무변….” 두 번을 뇌면서 흑2를 빌었다. 실로 놀라운 안목. 정석은 흑a, 백b지만 그러나 백b가 오면 우변 흑진이 삭감당한다. 흑2에 백A 나와 끊으면? 그때는 막지 않고 알파벳 순으로 두어 흑이 두텁다.

‘뭔가’를 원하는데, 그것이 너무 멀리 있거나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라면 공허감을 메우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생 백 년인데, 백 년 후에나 ‘뭔가’가 온다면 누가 그걸 견딜 수 있으랴.

요즘 바둑계, 90년대와는 또 달라
텅 빈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열정, 그것이 중독이다. 열정의 가치는 묻지 않는다. 중독의 내용도 묻지 않는다. 단지 중독과 공허감이 약정을 맺는다. 중독은 공허감을 전제하며, 공허감은 중독을 통해서만 해방된다.

중독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삶의 공성(空性)과 지향하고 있는 그 어떤 유(有) 사이에서 긴장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유와 공성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긴장을 즐길 수도 있다. 아니, 긴장이 없다면 삶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슈코는 살아남았다. ‘단 한 수’를 찾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에 큰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얻기 전까지는 공허감에 못 견뎌한다. 일을 해야만 한다. 술을 마셔야만 한다. 바둑도 두어야만 한다. ‘단 한 수’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없는 재화라도 돌멩이만 못하다. 슈코가 이것저것 다 해도 언제나 바둑으로 돌아간 이유다.

삶의 지향점이 뚜렷하지 못하면 길은 둘이다. 하나는 일상 속 평범을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독에 무너지는 것이다. 적당히 돈 벌어서 적당히 삶을 향유한다면 그건 전자에 속한다. 술을 과하게 먹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후자에 속한다.

90년대에 바둑계는 융성했다. 공부하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늘면 우승도 했다. 돈과 명예를 얻었다. 시간과 자유의 가치가 달라졌다. 시간을 아끼고 자유를 줄이면 돈이 되고 명예가 됐다. 후배들은 공부를 했다. 술 마실 시간이 부족해졌다.

호탕하게 말하면 90년대엔 낭만이 사라졌다. 낭만은 꿈속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꿈은 현실이 불만일 때에야 제대로 꿀 수 있는 것.

오늘, 바둑계는 90년대와는 또 다르다. 기사의 수는 90년대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속기(速棋) 바둑이 많아져서 시간에 대한 부담감이 늘어났다. 준비해야 할 시간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술 마시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시간과 술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60년대와 오늘은 다른 세상이다.

그래, 그렇다면 알겠다. 자유와 시간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면 60, 70년대 술과 바둑은 프로 스스로 선택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한때가 있었을 뿐이다. 또 하나 알겠다. 슈코처럼 ‘단 한 수’를 붙든다면 자유와 시간은 내면의 기준에 의해 쓸모가 결정된다. 약정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자유를 활용해 ‘단 한 수’를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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