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구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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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스라엘」의 수상부인이 미국은행에 1만2천「달러」의 비밀구좌를 가지고 있었다하여 수상이 드디어 사임했다. 사실은 비밀구좌도 아니었다. 기자가 손쉽게 추적할 수 있었고, 또 은행측에서도 쾌히 예금주를 밝혀줄 정도였으니까.
미국에는 비밀구좌제도란 없다. 온 세계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구좌번호만으로 예금할 수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저축예금뿐이다.
「스위스」은행에서도 사실은 무기명 예금제란 없다. 적어도 은행측에서는 예금주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저 그것을 절대로 밝히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이스라엘」수상부인이 정말로 비밀구좌를 가지려했다면「스위스」은행을 이용했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올만하다. 그 액수도 고작 우리나라 돈으로 6백만원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스위스」은행에는 지금 얼마나 비밀예금이 모여 있는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프랑스」에서「스위스」로 흘러 들어가는 돈만도 원 화로 따져서 연간 1천5백억 원이 넘고, 서구전체로 치면 4천5백억 원이 넘는다고 소식통은 짐작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의 범죄단체에서 흘러 들어가는 돈은 빠져있다.
지난 59년에「뉴스위크」지는 당시「스페인」에 망명 중이던「페론」이「스위스」은행에 1천5백만 「달러」를 예금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수카르노」의 미망인 「데위」가 아직 잘 살고 있는 것도 고 대통령이「스위스」은행에 비밀구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이집트」를 쫓겨난「파루크」가 호화로운 망명생활을 즐긴 것도 막대한 비밀예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이집트」정부도 여러번「스위스」은행에 그 예금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비밀구좌의 매력은 바로 이런데 있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연합군 측에서는「스위스」은행 안에 숨겨진「나치」재산을 내놓도록 요구했었다. 54년에는 또 「이스라엘」정부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된 유대인의 비밀예금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온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고「스위스」은행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스위스」은행법에 의하면 비밀구좌가 폐쇄 된지 20년 내지 25년이 지나도록 예금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그 돈은 은행이 차지하게 된다.
이런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시「스위스」은행은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떤 언급도 해선 안되는 것으로 금지되어있다.
가령「쿠바」의「바티스타」가 쫓겨나기 전에 3백만「달러」를「스위스」은행에 빼돌렸다는 부정확한 보도에도 그렇지 않다는 해명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비밀구좌에 얽힌 소문은 그칠 사이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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