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그 흐름의 굽이 (중)|「도덕 외교」와 「자주 지향」|성병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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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서방 진영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다만 그 「리더십」을 행사하는 방식은 장소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리더십」이 비교적 동등한 동참자적 바탕에서 행사되었다면 중남미와 「아시아」등 여타 지역에서는 후견자적 성격이 강했다.
후견자적이다 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국제 협력이란 차원을 넘어 국내 문제에 대한 간섭이란 양상마저 띠게 되는 수가 있었다. 11일 미 의회 시찰단과 함께 내한할 「홀브루크」 국무성 차관보는 야인으로 있을 때 이를 『반식민지주의 (Semi-Colonialism))』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미국이 「아시아」 제국에 대한 이러한 「반 식민지주의적 개입」에서 탈피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그 용어야 어떻든 미국의 고압적인 후견 자세는 그 동안 상대국의 정치적 자각과 경제적 성장으로 이미 용인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 현실을 미국이 인정하지 않을 때 그것은 긴장과 불화의 원인이 된다.
최근 인권을 중심 과제로 한 「카터」 행정부의 이른바 「도덕 외교」의 수행 과정에서 그러한 긴장과 불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인권이니 도덕이니 하는 명제 자체는 어느 누구도 정면으로 시비하기가 힘든 것이다. 더구나 동서 진영의 「이데올로기」 경쟁 과정에서 이는 서방 진영의 유력한 무기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 「카터」 대통령이 인권과 도덕을 미국 외교의 중심 과제로 삼은 의욕은 높이 살만한 구석이 없지도 않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 생각하는 그 도덕의 내용과 도덕 외교를 해 나가는 방식이다. 미국 사람들은 인권과 도덕의 기준으로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듯하다. 미국의 역사와 그 사회적 환경에 비추어 이는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이 역사와 여건이 다른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세계에는 개인적 자유 못지 않게 기본적인 인간적 수요 (Human Need)가 절박한 나라가 얼마든지 있다. 그 인간적 수요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일 수도 있고, 외부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생존 자체를 지키는 일일수도 있다.
또 그렇게 절박한 문제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자유나 역할보다 공동체 의식과 그에 대한 충실성을 더욱 중시하는 사회도 있다. 이러한 나라마다의 도덕적 우선 순위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대개 기인되는 것으로 그것을 비도덕적이라고 몰아 세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생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도덕적 우선 순위를 점하게 된다.
다른 문제는 그 다음에 문제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에게 최고의 도덕적 기준이 우리에게 제2, 제3의 기준일수도 있다는데 대한 미국인의 이해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이렇게 서로간에 우선 순위에 대한 동의가 이뤄져있지 않은 「도덕 외교」를 미국이 너무 성급하게, 또 공개적으로 떠드는 방식에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우방들에 미국의 가치 기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권할 수는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국제 협조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후견자적 간섭으로 밀고 나간다면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심한 반발을 사 개선코자하는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마저 없는 것이 아니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5개국의 대미 반발과 인니·「필리핀」 등 「아시아」제국의 경고가 바로 그 조짐이다.
미국무성이 최근 인권 문제를 외원에 결부시키거나 공개 비난을 삼가겠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태에 대한 반성으로서 주목된다.
비단 인권 문제나 도덕 외교와 관련해서 뿐이겠는가. 이제 우방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동등한 동참자란 바탕에서 수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나라는 지난 십수년간의 경제 발전을 토대로 자립 경제, 자주 국방, 자주 의식의 고양 등 자주 지향의 국가 시책을 펴고 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측면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이 결코 미국을 멀리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미국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오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주 지향은 국가와 민족의 기본적인 존재 성향이지, 일시적으로 어떤 특정 대상을 의식해서 하는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자주 지향은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도외시하고 있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나 사회·경제 구조상 외교·군사·경제적인 한미 우호 협력 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계속 불가결한 요소다.
때문에 그러한 협력 관계가 호혜적 바탕에서 제각기의 책임과 목소리를 지니고 전개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한미 관계의 당면한 과제다. (필자=본사 논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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