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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경쟁은 그만, ICT 융복합에 승부 걸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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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30년 전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텔레콤의 전신)가 설립됐을 당시만 해도 이동통신 분야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는 컸다. 1946년 미국 벨이 처음 차량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지 40년 가까이 된 84년에야 국내에 카폰을 들여왔을 정도였다. 한국에선 88년 시작된 휴대전화 서비스도 미국에서는 73년 등장했다. 하지만 96년 한국이 세계 최초로 2세대(2G)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후부터는 세계 이동통신 기술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3세대(3G) 서비스를, 지난해엔 다시 세계 최초로 4세대(4G)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드(LTE-A)까지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최첨단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이동통신 산업이 30돌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열린 ‘모바일 혁신 어워즈’에서 수상자들은 한국 이동통신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 한국이 ICT 강국으로 도약하게 된 전환점은.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93년 디지털 이동전화 기술표준을 정하면서 CDMA로 가느냐, 시분할다중접속(TDMA)으로 가느냐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정치권·학계에서는 외국에서 성능이 입증된 TDMA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의견을 믿고, CDMA를 선택했다. 당시 언론에서 엄청난 비난을 했지만 결국 ETRI가 옳았다. 한국은 CDMA 방식을 선택하면서 최신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하고 상용화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신용섭 EBS 사장=ETRI 연구원들이 열심히 일했다. 빠듯한 개발 일정에 야근과 밤샘은 일상이 됐고, 새벽에 호출을 받고 나오는 일도 빈번했다. 당시 정보통신부에서 일할 때인데 추석 연휴 때도 집에 안 보내준다며 연구원 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기억이 난다. 90년대 초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하던 모토롤라는 한국이 CDMA를 개발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방심했다. 우리가 모토롤라보다 CDMA를 먼저 상용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상은 남의 얘기였을 것이다.

 ▶한기철 ETRI 책임연구원=CDMA 도입은 당시 국내 인프라와 단말을 완전히 장악하던 모토롤라를 내보내고, 한국의 기술적 자립을 가져왔다. 나중에 모토롤라 고위 관계자가 “한국이 최소한 3년 걸릴 줄 알았는데 1년 만에 성공한 게 놀랍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하루 8시간 일하는 기준으로라면 3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24시간 일한 셈이니 틀린 계산은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 한국의 ICT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조정남 전 SK텔레콤 대표이사=국가가 기술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기업·기술자 이 세 축이 조화를 이루면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돌아보면 정부는 과감하게 정책을 펼쳤고, 기술자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으며, 기업은 이들을 믿고 거액을 투자했다. 이 셋의 힘으로 한국 ICT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위기론도 나온다.

 ▶윤동윤=아직도 이통사들이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을 하는 게 안타깝다. 이젠 서비스 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식으로 산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정부에서는 요금인가제 같은 낡은 규제를 없애고, 이통사들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통사가 휴대전화 단말기를 직접 팔면서 보조금 주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TV 사는 데 방송사가 보조금을 주는 격이다. 소비자가 일반 가전매장·쇼핑몰 등에서 단말기를 구입한 뒤 원하는 이통사를 선택해 가입하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 이통산업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

 ▶한기철=한국의 인구 구조상 이동통신 가입자를 더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이 확장되면 사람이 아닌 기계를 가입시킬 수 있다. 폐쇄회로TV(CCTV)를 통신과 연결한다든지, 각종 센서를 네트워크로 묶는 식이다. 5G 통신기술이 상용화되면 이통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박항구 소암시스텔 회장= ICT와 다른 산업의 융합이 필요하다. 바이오·자동차·조선 등의 산업에 ICT를 접목하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엄청난 생산 유발효과를 불러온다. 물론 ICT 본연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ICT 기술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타 산업과의 융합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 융복합 시대에 이통산업이 어디로 진출할 수 있을까.

 ▶홍순호 전 삼성전자 부사장=주요 사회 인프라나 무인항공기·로봇 등에는 이미 이통 기술이 접목돼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 이런 융복합이 늘어날 것이다. 농수산물에 접목시키면 스마트 농업이 된다. 소비자들이 농수산물의 생산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든지, 각종 농축산물을 도시 소비자와 연결해 직거래를 도와주는 식이다.

 ▶신용섭=이제 통신과 방송의 칸막이도 사라졌다. 예전에는 모바일 서비스가 음성통화 기반의 ‘오디오’ 중심이었다면 이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비디오’ 중심이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창의력 있는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콘텐트를 발굴하고, 이를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유통시키면 새로운 벤처 생태계가 창출될 수 있다.

정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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