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원한살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든 범죄에는 으례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살인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금품탈취·치정관계·원한에 의한 복수 등이 살인사건의 주된 동기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앙드레·지드」는 동기없는 살인을 그의『교황청의 지하도』에서 그려 주목케 한바 있다. 주인공인「라프가디오」는 다만 우연히 함께 탄데 불과한 중년 중사를 달리는 열차에서 떼밀어 추락사시킨다. 이 살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고 그 신사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다. 청년은 다만 아무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행위가 하고 싶을 뿐이었다. 인간의 일상 행위를 속박하고 있는 사회 관습이나 윤리에 도전함으로써 해방감을 느꼈다.
이 가해자·피해자 쌍방의「무동기의 행위」는 부조리와 실존에 관련된 문제로서 문학상의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문학작품 세계가 아닌 현실 사회에선 동기 없는 살인 같은 범죄는 사실상 있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걸음 나아가 따져보면 비록 가해자에겐 범죄의 뚜렷한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에겐 소위「무동기의 범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뿐더러 오늘날 이것이 세계적으로 큰 문젯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설정이다.
불특정 다수인을 살인의 대상으로 삼는 각종「테러」행위·폭발 및 무차별 총격사건의 경우, 단지 재수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밖에 없는 불특정 다수인의 한 사람인 피해자에겐 살해될 이유도 동기도 없는 것이 아닌가.
10일 밤 관악구 방배동에서 일어난 한 형사 부인의 피살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결코 가벼이 봐 넘겨 버릴 수 없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이번 살인사건은 피살된 한씨의「핸드백」속의 현금 4만5백원과 팔목시계 등의 소지품이 그대로 남아있고 반항한 흔적이 없는데다 단일적으로 치명상을 입힌 점, 그리고 어머니 회장으로서의 활동 등 명소의 단정한 품행으로 미루어 원한에 의한 보복 살인으로 경찰은 단정하고 있다.
특히 남편 이 경위가「포강왕」으로 선정될 만큼 민완 수사관으로 2천 여건의 요·강도 사건을 해결했기에 이에 앙심을 품은 전과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백보를 양보하여 설사 이 경위에게 철천지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그 분풀이를 그의 아내에게 해야 하는가 말이다. 죽은 한 여인은 수사관 남편을 가졌다는 것밖에 아무 잘못도 없고, 더우기 원한 살인의 희생이 돼야 할 이유란 털끝만큼도 없지 않은가. 원한 살인의 경우 아무 죄도 보임도 없는 약한 아내를 습격하거나 어린이를 유괴 살해하는 것만큼 비겁하고 비열한 행위는 없다.
나아가 정당한 공무집행의 결과 협박을 당하거나 이런 비극적인 원한 보복을 당한다면 어느 수사관이 안심하고 도둑잡기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과거에 부모나 군주 의원 수에 대한 복수 살인은 무사도와 효도의 차원에서 미덕으로 장려된 적이 있긴 했으나 어처구니없게도 자기의 범죄에 대한 잘못을 뉘우침이 없이 사원에 의한 보복 살인을 한다는 것은 사회 기저를 흔드는 용서될 수 없는 범죄로 엄단돼야 한다.
또 우발적이거나 격정적인 경우 등은 정상참작의 여지도 있으나 이번 사건같은 계획적인 피살은 동정의 여지조차 없다.
경찰은 파렴치하고 잔인 무도한 이같은 반사회적 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또 이같은 범죄의 어설픈 흉내를 낼 범죄 예비군의 발생을 막기 위해 범인을 빠른 시일 안에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죄 없이 빗나간 원한살인에 희생된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고 그 가족의 슬픔을 달래는 일이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