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안팎의 시련<그릇된 선입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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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에 대한 심한 비판과 사회적 압력은 바꾸어 말해서 기업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이나 비난도 있을 수 없다. 자유경제 체제에 있어서 기업은 경제발전의 대들보이며 원동력이다.

<사회적 요구 가중>
2차 대전 후 기적같은 경제부흥을 이룩, 오늘날 경제 우등생으로 손꼽히고 있는 서독이나 일본 경제의 주된 추진력도 장의에 차고도 전적인 민간 기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기업의 성장이나 증설화는 바로 국민경제의 발전과 표막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기업이 커지고 국민경제가 발전할수록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그것이 바로 기업 비판으로 나타난다. 아직 저개발국이면 기업 비판이 없다. 비판을 받을 정도의 기업이 발아하지 못하고있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가 발달한 구미나 일본에서 훨씬 기업비판「무드」가 높다.「슘페터」는『만약 자본주의가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공황이나 실업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공 때문일 것』이라고 간파한 바가 있는데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사회의 긴장관계는 공업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하나의 가세이지만 통상적으로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1천5백「달러」수준이 되면 기업과 사회의 마찰은 심각하게 된다 한다. 제1차 대전 이후의 미국, 60년대 전반기의「유럽」, 60년대 후반기의 일본 등이 이에 해당된다.
1인당 GNP가 1천5백「달러」라면 현 수준으로 보아서 선진 공업국의 초기 단계에 해당된다. 대량 소비시대가 막 시작되려는 단계다. 한국의 76년도 1인당 GNP는 6백98「달러」.
현 4차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한국의 물가가 미국보다 크게 더 오르지 않는다면 81년의 우리나라 1인당 GNP가 1천5백「달러」수출이 뛴다. 80년대엔 현재 구미나 일본에서 일고있는 기업 비판론이 한국에도 불어닥칠 것이라 보아도 틀림없다. 기업 비판론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한 나라일수록 더 격렬하다.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기업의 급성장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유발한다.
전후 거의 잿더미에서 오늘날의 경제 기적을 이룩했고 지금도 맹렬한 속도로 경제 대국화하고 있는 일본에서 기업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일본에선 기업의 긍정적 측면은 외면되고 부정적 측면만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기업 죄악론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 3일「피스톨」과 일본도로 무장한 청년들이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 침입, 난동을 부린 것도 기업비판「무드」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은 격문에서『재계의 영리주의가 사회의 퇴폐를 초래, 아름다운 산하를 경제주의로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광민부경단운회장은 대기업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오해다. 기업이 기업으로서 건전한 형대로 영리를 도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주역은 역시 기업>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기업의 중요성이나 역할에 대한 인식보다는 나쁜 측면이 너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부실기업·반사회적 기업경리 등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나쁜「이미지」가 공명·확산된 것도 사실이다. 악덕기업인도 있고 또 기업이 반성할 점도 많다. 그러나 전체 기업에 대해 나쁜 선입관을 갖고 보는「무드」는 문제가 있다.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자유경제 체제의 골격 위에서 경제개발을 계속해야 하고 그 주역은 기업이 담당치 않을 수 없다.
전체기업이 그 기능이나 역할을 정당히 인식 못 받는 사태는 기업은 물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이나 국민들 모두가 기업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단계가 된 것 같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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